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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24

2024 제1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 김멜라 외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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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 01. 「이응 이응」, 김멜라

할머니와 반려견 보리차차를 잃고 ‘나’는 이응이 보급된 세계 안에서 살아가며 포옹을 나누는 클럽 ‘위옹’에 가입한다. 그 결정은 어쩌면 “그 짓이 맞나 틀리나 긴가민가할 땐 똑같은 짓을 한번 더 해”(p.10) 보라 했던 생전 할머니의 영향일 수도 있겠다. 결과적으로도 ‘나’에게 그 조언은 제법 유용했던 것 같다. 이응의 쓸모가 단순한 욕망 해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서적 교류를 통해 맺은 관계가 가져온 상실의 빈자리를 채워줄 획기적 대체품이 될 수도 있다면 말이다. 그러나 인위적 설정과 그것의 터득, 나아가 해결을 위한 소모품이라는 지점에서 역시 불편해지고 만다. 저항감이 있더라도 그렇게 체득한 것은 결국 누군가를 끌어안고 싶은 욕망 앞에서 무용해지며 또 한 번의 해결을 위해 기꺼이 쓰일 것을 경계해야겠다는 안간힘일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그런 내 안의 혼란이 “우리의 스토리가 마음에 드셨습니까?”(p.46) 건네는 물음 앞에서 심한 당혹감을 느끼게 만들었는지도….

 

내가 잃어버린 화살은 모두 내 안에 있었다. (…) 나는 이응 안에서 오래 포옹했다. (…) 더 깊은 품으로 스며들고 싶었다.    - p.46

 

 

 

# 02.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공형진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일 (p.85)을 하고 있는 곽주호와 문희주. 그것은 다름에 아닌 수영을 배우는 일이었다. 그 안에서 그들에게 닥친 난제는 물속에서 몸의 힘을 조절하는 “균형”(p.86)감각을 기르는 것. 그렇게 지금 그들은 지내온 삶에서 한 발짝 물러나 수영을 통해 애쓰고 있는 것이다. 일상 속 잃어버린 균형을 찾기 위한 나름의 숨 고르기를 하며.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터이므로 화내거나 안달하지 말고 제 방식대로 삶을 사랑하며 살아갈 그들의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희주가 먼저 간다. 주호가 뒤따른다. 물이 흔들리고 물이 휜다. 딱 그만큼 몸이 흔들리고 몸이 휜다. 떠오르는 몸. 가라앉는 몸. 물을 밀어내는 만큼 밀려가는 몸. 밀어내는 만큼의 무게. 딱 그만큼 두 사람은 손안에 들어오는 물을 만진다. 움켜쥔다. 갈 수 있는 만큼 간다.    - p.98

 

 

 

 # 03. 「보편 교양」, 김기태

곽이 느낀 “사람을 전혀 파괴하지 않고도 패배시킬 수 있는 달콤함”(p.139)에 대하여 한참을 곱씹어본다. ‘고전읽기’ 수업을 맡으며 누구에게나 필요한 보편적 교양을”(p.122) 가르치고자 의욕적이었지만, 한창 입시 준비 중인 학생들에게 외면받는 현실을 씁쓸히 이해할 수밖에 없던 그였다. 그나마도 자신의 수업에 흥미를 보인 은재 — 비록 『자본론』을 읽혔다는 아버지의 민원이 있기는 했지만 — 에게 최대치의 도움이 되고자 생기부 작성에도 정성을 들이던 그였다. 그런 은재가 서울대 합격을 하고 건넨 달콤한 성의 앞에서 전한 한 마디는 확실히 그를 파괴하지 않고도 패배감에 젖게 만들었다. 그것은 어쩌면 더는 보편적인 것이 통용되지 않는 교육 현실, 그 일선의 쌉싸름한 뒷맛이지 않았을까.

 

…모든 사유의 방황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거슬러올라가 은재와 은재 아버지와 교장과 동료들의 언사에서 사실과 의견을 분리하였으며, 고전읽기 수업을 포함하여 읽고 쓰고 생각하고 가르치는 삶 전반에서 자신의 패착을 검토해다. 이 세계와 학생들과 부분적으로는 자기 자신까지 더 정교하게 이해하고 설명하고 변호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결론에 닿았다. ‘나는 『자본론』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수업을 했다.’    - p.139, 140

 

 

 

# 04. 「파주」, 김남숙

누군가는 반복적으로 떠올릴 수밖에 없는 일을 또다른 누군가는 쉬이 잊는다. 그 간극은 결국 상처받은 사람과 상처 준 사람, 사과를 받아야 할 사람과 용서를 구해야 할 사람의 차인지도 모르겠다. 현철은 미워하고 무서워하는 마음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고자 시시한 복수를 감행하고, 정호는 희미해진 기억 속 분명한 자신의 과오를 온전한 제 잘못이 아닌 건처럼 굴면서도 현철이 내린 처분에 따른다. 어느 모로 보나 진실된 사과와 용서의 모습은 아니지만 제 앞에 놓인 삶, 살아 있어 다행까지는 아니더라도 죽지 않고 내일을 맞이하기 위한 그들 나름의 최선이 안쓰럽다.

 

이런 얘기 진짜 웃기지만요. 살아 있어서 다행이다, 그런 생각 해본 적 있어요? (…) 전 없어요. 매번 고비의 고비의 고비. 이거 넘기면 또 비슷한 게 기다기고 있고. 근데 조금은 나아질 방법이 있어요. 남들이 보기에 그 방법이 비열해 보이고 엿같아 보이고 역겨워 보여도. 어쩌겠어요. 그렇게라도 보상받고 싶은 걸…… 그게 진짜 존나게 받고 싶은 걸……    - p.181

 

 

 

# 05. 「반려빚」, 김지연

“정현아, 나 못 믿어?”(p.217) 묻는 서일을 믿고 싶지만 제 자신을 믿을 수 없기에 “서일아, 나는 너 못 믿어.”(p.217) 대답했던 정현. 언젠가 서일은 이렇게도 말했다. “너는 나를 못 믿는댔지만, 난 너 믿어.”(p.222)라고. 그 달콤한 말의 기억과 감정은 서일이 갚지 않아 생긴 반려빚과의 동거를 정현으로 하여금 가까스로 가능하게 했던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다행히 후일 서일은 돈을 갚았고 정현은 반려빚과 이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현은 홀가분한 기분 뒤에 남은 텁텁한 뒷맛을 오래도록 음미하게 되리라.

마침내 0이 된 기분. 정현은 그 이상을 바라는 것도 이상하게 무섭기만 해서 그저 0인 채로 오래 있고 싶었다.    - p.229

 

 

 

# 06. 「혼모노」, 성해나

‘나’(문수)의 삽십 년 박수 인생의 깨달음 — “누구를 위해 살을 풀고 명을 비는 것은 이제 중요치 않다. (…) 이제야 진짜 가짜가 된 듯.”(p.280) — 안에서 문득 우리가 제 안에서 구분 짓고 판별하는 모든 것들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된다. 진짜인 것과 가짜인 것, 언뜻 그 둘을 가르는 선은 명확해 보이지만 실상 그것은 모호할 때가 더 많지 않은가. 그럼에도 우리는 세상이 그렇다고 여기고 자신 역시 그렇게 믿는 진짜를 끊임없이 욕망하며 가짜인 것을 경멸하고 배척한다. 그러나 문수가 깨우치듯, 그 가짜는 외려 진짜에 가까운 것일 수도 있음을, 그러므로 그것에 가닿기 위한 첨예한 대결에서 쉬이 물러서지 말아야 함을 말하고 있는 것도 같다.

 

하기야 존나 흉내만 내는 놈이 무얼 알겠냐만은. 큭큭, 큭큭큭큭.    - p.281

 

 

 

# 07. 「언캐니 밸리」, 전지영

‘나’는 청한동 꼭대기를 수시로 드나든다. 그 반복된 행위를 줄곧 생각하게 된다. 유년 시절에 받은 성적 수치심과 왜소증 탓에 특수 개조한 택시를 몰며 손님들로부터 받은 따가운 시선은 그가 감당해야 할 감정들을 줄곧 부추겨 왔다. 그 와중에 만난 ‘당신’이 청한동 꼭대기 한 노부부의 집에서 우두커니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돈을 번다는 말을 했을 때 묘한 동질감을 느끼는 듯도 했다. 이후 청안동에서 염산 테러 사건이 발생하고 우연히 마주한 노부인은 거동은 불편해 보였지만 그 집을 드나드는 어느 누구보다도 권력을 지닌 사람이라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어쩌면 그것이 내면 깊숙이 자리한 “어디에서나 보이지만, 결코 가까워질 수 없는”(p.298) 것들을 향한 그의 반발심이 아니었을까.

 

당신의 목적지는 언제나 청한동 꼭대기였다.    - p.297

 

 

 

 

 

2024 제1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 8점
김멜라 외 지음/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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