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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24

샤이닝 | 욘 포세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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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삶과 죽음의 문턱에 놓인 작은 경이
어둠 속에서 만나는 존재라는 빛

 

 

 

나는 길을 잃고 어두운 숲속에 홀로 있다. 어찌하여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인지 되짚어 보지만 혼란스럽기만 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해 보려 하지만 그 역시 녹록지 않다. 그렇게 하염없이 걷다가, 무언가를 보기도 하고 듣기도 하지만 모든 것이 불가해하다는 것 밖에는 그 무엇도 확실하지 않다. 다만 환영일지 모른다고, 상상일지도 모른다고 여기면서도 계속해서 그것들을 좇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 과정 안에서 결국 나는 무無의 세계에 진입하여 반짝이는 자신과 주변의 존재들을 마주하게 된다. 

욘 포세는 2023년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연설문을 통해 문학언어란, “의미를 가지고서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p.88)이라고 밝힌 바 있다. 어쩌면 그는 수상 이후 『샤이닝』을 통해 다시금 그와 같은 작가적 소신을 바탕으로 우리가 마주한 ‘삶’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 안에서 나는 자연스레 “의미를 가지고서 그 자체로 존재”해야 하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곧 저마다의 순백색 속에서 반짝이며 숨 쉬고 있는 존재가 다름에 아닌 우리 자신이어야 한다는 것과도 연결됐다. 거기에까지 도달하는 길은 어둡고 험난하지만, 이 모든 것을 통과한 사람들만이 가닿을 수 있는 경이임을 떠올려 볼 때, 그것은 분명 우리 모두가 바라 마지않은 순간이 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다 어느새 나는 너무나 강렬해서 빛이라 할 수 없는 빛 속에 들어와 있다, 아니, 이것은 빛이 아니다. 일종의 공백이며 무無다, 문득 나는 그 빛나는 존재가, 순백색의 반짝이는 존재가 우리 앞에 서있는 것을 본다, 그가 따라오라고 말하고, 우리는 그의 뒤를 따라간다, 아주 천천히, 한 발짝, 한 숨 또 한 숨, 검은 양복을 입은 얼굴 없는 남자, 나의 어머니, 나의 아버지, 그리고 나, 우리는 맨발로 무의 공간 속으로 들어간다, 한 숨 또 한 숨, 어느 순간 숨이 사라지고, 그곳에 잇는 것은 오직 호흡하는 무를 빛처럼 뿜어내는 반짝이는 존재뿐이고, 어느새 숨을 쉬고 있는 것은 우리다, 각각의 순백색 속에서.    - p.80, 81

 

 

 

 

 

샤이닝 - 8점
욘 포세 지음, 손화수 옮김/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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