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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삼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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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 이병률 | 문학동네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집이 비어 있으니 며칠 지내다 가세요’라 건네는 시인의 첫말이 포근하게 다가오는 시집,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바다는 왼쪽 방향이고 슬픔은 집 뒤편에 있’다고 덧붙인 말 안에 스민 지극한 배려가 어수선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애써 외면하고 또 그런 식으로 잊으려 했던 나의 슬픔을 가만히 응시하게 한다. 살피고 보듬게 만든다. 그야말로 시집 자체가 나에게 하나의 온화한 집이 되어준 셈이다. ‘그 집에 살다 가세요’라고 말해주는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산란했던 마음이 한결 놓이고 말았으니까. 삶에 짊어진 슬픔을 시인이 창조해 낸 시적 언어 안에서 위로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어찌나 놀랍고도 멋진 일인지 새삼 감탄하면서. 이 생에서는 실컷 슬픔을 상대하고 단 한 줄로..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 박준 | 문학과지성사 어떤 빚은 빛으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계절의 흐름 안에서 묻는 안부가 사려 깊다. ‘한결같이 연하고 수수한 나무에게 삼월도 따듯한 기운을 전해주었으면 한다’(p.11) 말하는 소박한 바람과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p.49)다는 에두른 인사가 너른 마음 씀씀이를 가늠케 한다. ‘가을에는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날들이 있다고 믿는’(p.64) ‘나’는 섣달의 어느 날, ‘영아가 오면 뜨거운 밥을 새로 지어 먹일’(p.83) 생각에 며칠간 뜸했던 부엌으로 향하며 ‘너’를 생각하기도 한다. 그 조심스러운 한마디, 과장하지 않는 몸짓 하나하나는 사소한 듯 하나 더없이 살뜰하기만 하다. 그렇게 내 안에 스며든 마음, 조금 보태어 누군가에게 고스란히 전하고 싶어 지는 기분이 든다. 그 대상을 찾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