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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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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목 | 박완서 | 세계사 작가가 가장 사랑하고 소중히 한 첫 작품 스무 살, 순수하고 젊은 날의 황량한 기억 『나목』은 박완서 작가의 첫 장편소설로도 유명하지만, 화가 박수근과의 인연을 토대로 창작했다고 하여 더욱 잘 알려져 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모두가 어렵던 시절 PX에서 근무하다가 우연히 초상화부 화가로 박수근이 들어오게 되면서 생긴 인연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이어짐의 길이가 채 1년에도 못 미친다는 작가의 말을 떠올려봤을 때, 작가 박완서에게는 그 만남이 꽤 강렬하게 남아있었던 듯싶다. 사실 박수근에 대한 언급은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에서도 나온다. 옥희도라는 이름을 빌려 등장시킨 『나목』과 달리, 실명으로 언급하는 부분이 있는데, 박수근이 남긴 작품 외적인 부분, 그러니까 당시 생활인 박수근의 삶..
오 해피데이 | 오쿠다 히데오 | 재인 오쿠다 월드에서 벌어지는 여섯 가족의 짜릿하고 유쾌한 이야기! 헤아려 보니 『스무 살 도쿄』를 시작으로 은근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들을 꾸준히 읽어왔다. 여기엔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의 전매특허 능청스러운 유쾌함이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공중그네』, 『인더풀』, 『면장선거』에 등장하는 닥터 이라부 캐릭터는 단연 으뜸에 빛난다. 다소 엉뚱하면서도 엽기적이기까지 하지만 신통방통하게도 환자들을 말끔히 치료해내는 정신과 의사 이라부. 정말이지 이런 의사가 있다면 어떨까, 상상을 해볼 정도로 빠져들었고, 그런 인물을 창조해 낸 오쿠다 히데오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 해피데이』 또한 그 연장선상에서 기분 좋은 유쾌함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더군다나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꿈..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 존 그린 | 북폴리오 세상은 절망이라 부르는 짧은 삶을 영원으로 만들다 어린 철학자들의 반짝반짝 빛나는 러브 스토리! 삶과 죽음을 고민하며 아파하기에는 아까운 십 대 나이의 소녀, 소년의 이야기가 시종일관 안타까운 마음을 들게 한다. 그러나 정작 헤이즐과 거스 그리고 아이작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그저 괴로워하고 있지만은 않는다. 오히려 주어진 시간을 보다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 노력하는데, 그런 그들의 모습이 마냥 사랑스러웠고 한편으로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삶을 멋지게 이어가고자 하는 의지의 모습이 나를 부끄럽게도 했다. "우리의 사랑 이야기를 할 수는 없으니까 수학 이야기를 할게요. 전 수학자가 아니지만, 이건 알아요. 0과 1사이에는 무한대의 숫자들이 있습니다. 0.1도 있고 0.12도 있고 0.112도 있고 그 외..
보다 : 김영하의 인사이트 아웃사이트 | 김영하 | 문학동네 사람을, 세상을, 우리를, '다르게' 보다 인간과 세상에 대한 스물여섯 개의 짤막한 이야기를 한데 모은 산문집이다. 소설가 김영하의 글만 읽다가, 인간 김영하가 세상살이에서 경험하고 느꼈던 것을 나누는 글들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여서 그 나름대로 신선했다. 특히나 큰 범주 안에서 그와 동일한 시대 그리고 공간을 공유하는 한 인간으로서, 고개가 끄덕여지는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있었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에 수긍하는 부분도 있어서 그 어느 때 보다도 막힘없이 읽을 수 있었지 않나 싶다. 그러면서 새삼 그의 예리한 시선과 깊은 통찰에 감탄하기도 했고. 우리가 가장 연기하기 어려운 존재,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끝없이 변화하며, 그렇기 때문에 그게 무엇인지 영원히 ..
등 뒤의 기억 | 에쿠니 가오리 | 소담출판사 '너의 인생은 어땠어?' 에쿠니 가오리의 신작이라서 눈길이 가기도 했지만, 그녀가 적은 '감성 미스터리'라는 점에서 더욱 끌렸다. 개인적 취향이기도 하지만 문학과 예술에 있어서 만큼은 대놓고 드러내는 것보단 보일랑 말랑, 알듯 모를 듯 아리송한 그리고 은은한 쪽이 훨씬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그 편이 더 강한 호기심을 일으킬뿐더러, 가슴에 남는 미묘한 기운도 훨씬 강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등 뒤의 기억』은 매우 만족스러운 책이었다. 더구나 요즘 같은 날에 꼭 어울리는 흐름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옷깃 사이로 스미는 서늘한 공기가 한겨울의 그것 보다 오히려 더 차갑게 느껴지는 요즘, 유난히도 헛헛했던 마음이 조금이나마 채워진 기분이었달까. 지금으로 선 한여름에 이 책을 다시 ..
선셋 파크 | 폴 오스터 | 열린책들 과거와 미래를 잇는 중간 지대 선셋 파크. 그곳에서 저마다의 전쟁을 치르며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이야기! 선셋 파크라는 공간은 빙, 엘런, 앨리스 그리고 마일스에게 각기 어떤 의미로 기억될까. 읽고 나서 문득 그들의 입을 통해 직접 그 답을 듣고 싶단 생각을 했다. 기왕이면 선셋 파크를 떠나게 되고 적어도 십 년 이상의 시간이 흐른 뒤의 그들의 대답이라면, 좀 더 나를 만족시킬 수 있는 얘기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기대감을 안고서. 마일스를 비롯한 젊은 등장 인물들은 저마다 순조롭지 못한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선셋 파크조차도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상황 안에서 보이지 않는 불안한 내일을 맞이하고 있는 셈이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사람 인생이라고 흔히들 말하지만, 이때야말로 알게 모르게 그런 삶을 ..
미생 스페셜 리미티드 에디션 | 윤태호 | 위즈덤하우스 대한민국 모든 직장인의 인생 교과서! “이 만화를 통해 일의 기쁨과 슬픔, 좌절과 환희를 배웁니다.” 『미생』에서 단연 돋보이는 점은 바둑과의 접목이다. 생각해보면 바둑판 위의 모습은 우리가 고군분투하는 그 판과 놀라우리만큼 흡사하다. 바둑 용어로 '아직 살아남지 못한 자'를 의미하는 '미생'은 갑(甲)과 을(乙)이 혼재되어 있는 관계 안에서 그 누구도 절대적인 갑이 될 수 없음에 한탄하고 좌절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더 나은 내일을 그리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물론 그 과정은 순탄치 않다. 이는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디딘 장그래에서부터 그 윗선을 아울러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다. 저마다 서 있는 위치는 달라도, 그 자리에서 각자가 느끼는 희로애락의 감정들은 결국 별반 다르지 않..
사랑하기 때문에 | 기욤뮈소 | 밝은세상 젊은 날을 사로잡은 슬픔과 분노, 그 뿌리 깊은 상처를 감싸는 깊고 따스한 시선……. 기욤 뮈소의 소설을 여러 편 읽다 보니, 분명 등장하는 인물이나 배경은 조금씩 다르지만 어딘가 모르게 흐름의 유사성이 있어서 참신함이 떨어진다고 생각되는 시기가 있었다. 물론 시공간을 넘나드는 박진감 넘치는 전개인만큼은 언제나 몰입도를 최고조로 이끌었지만. 어쨌든 기존의 익숙한 작가 말고 새로운 작가의 글을 읽고 싶단 생각과 맞물려 한동안 그의 소설을 의도적으로 피했었다. 그러다가 오랜만에 다시 펼쳐 든 소설이 『사랑하기 때문에』였다. 역시나 눈에 띄는 건 철저하게 계산된 치밀한 구성이다.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전개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달까. 그리고 어찌 보면 황당무계할 수도 있는 판타지적 요소마저, 그의 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