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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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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테이션 | 더글라스 케네디 | 밝은세상 한 번의 성공이 반드시 '영원한 성공'으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벤이 우발적으로 게리를 살해한 후, 시신을 지하 냉장고에 넣다가 문이 닫히지 않자 발목을 절단하는 장면이 머릿속에 강렬하게 남아있다. 인생의 꿈이었던 일이 이루어지는 순간, 찾아오는 불행의 늪…, 그리고 그 결말. 거울 같은 것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게 되는 순간부터, 인간은 날마다 자신을 엄습하는 질문, '이 세상 속에서 나는 누구일까? 나라는 존재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라는 오리무중의 질문에 시달리는 게 아닐까. 그러나 그런 질문을 던져도 답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지금의 나처럼, 그래도 답 하나는 얻을지 모른다, 역시 지금 내가 스스로를 타이르며 말하는 것 같은 답을. 그런 불가능한 질문들은 아예 생각하지도 말자. 모든..
세상에 예쁜 것 | 박완서 | 마음산책 작가 박완서의 성찰과 지혜, 미출간 산문들! 급격하게 쌀쌀해지기 시작한 11월을 『세상에 예쁜 것』과 함께하면서 마음이 따뜻해질 수 있었기에 참 고맙다. 사실 박완서 작가의 소설들을 아예 안 읽었다고도 할 수 없지만, 관심 있게 읽었다고도 할 수 없는지라 여백이 많은 상태에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사실 이 책도 우연하게 서점에서 발견하고는 이걸 인연으로 삼고 마지막으로 남기신 『세상에 예쁜 것』에 실린 글들을 시작으로 거꾸로 시간 여행을 하듯 읽어 보자는 심산이었다. 역시나 책을 덮으며 이제 더는 박완서 작가의 새로운 글을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워질 만큼 지혜와 통찰이 있는 한 권이었다. 아직 읽지 못한 많은 책들이 기다려진다. 40세에 첫 소설을 쓰고 나서 다시 40년..
かもめ食堂(카모메 식당) | 群ようこ | 幻冬舍 "이곳에서는 모든 일이 잘 풀릴 것 같아요" 앞서 영화로 본 적이 있어서 원작 소설은 어떨지, 궁금한 마음에서 읽어 보았다. 핀란드의 헬싱키라는 낯선 공간에서 음식을 매개로 하나 둘, 낯선 사람들과 인연을 맺어가는 잔잔하면서도 따뜻한 이야기 그대로였다. 함께하는 내내 이런 식당이 내 주변에도 있다면 정말 푸근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동시에 핀란드로 여행 떠나고 싶은 마음을 들게 했던 것 까지도. 다른 점이 있다면, 소설 도입부에 영화에서는 나오지 않았던 이야기 그러니까 핀란드로 떠나기 전 주인공 사치에의 삶에 대해 그리고 있다는 정도다. '인생은 전부 수행(人生すべて修行)'이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는 아버지와 단둘이 살아가던 그녀가 복권에 당첨되면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핀란드로 떠나게 된다는, 카모메 식..
바나나 키친 | 요시모토 바나나 | 민음사 같이 살아간다는 것은 같이 식탁에 마주 하는 것 『키친』의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가 그리는 하루하루 '먹는 이야기' 요시모토 바나나의 대표작 『키친』의 개정판인가 싶었는데 그건 아니고, 그녀가 진솔하게 적어 내린 키친 에세이다. 그럼에도 - 그녀의 진심에서 출발한 소설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았던 - 소설 『키친』의 첫 문장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부엌이다. 私がこの世で一番好きな場所は台所だと思う。 요시모토 바나나에게 있어서 키친이라는 공간은 추억과 일상의 행복이 집결된 그야말로 '진짜 일상이 담긴 곳'이었다는 걸, 『바나나 키친』을 읽으며 느낀다. 그때그때, 있는 그대로 마음 가는 대로 썼다고 적은 그녀의 키친을 마주하면서 식탁 위에서 찾은 그녀의 이야기들이 단..
치즈랑 소금이랑 콩이랑 | 에쿠니 가오리 외 | 시드페이퍼 일본 최고의 여류작가 4인이 유럽의 작은 마을을 다녀와 써내려간, 음식과 치유에 관한 소설 "당신의 소울 푸드는 무엇인가요?" 함께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음식을 먹는다는 것.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안에서 참으로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말하자면, 서로가 서로를 맞대고 있는 행복한 자리인 셈이니까. 하지만 너무나도 당연해서 어떠한 의미도 갖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가 더러 있다. 당연한 시간, 공간 그리고 음식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타지에서 홀로 마주했던 식탁이 그간의 감사함을 일깨웠다. 그 안에서 내가 성장하고, 치유받을 수 있었음을. 함께할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해야지. "똑같다. 도망치고 도망쳐서 이제 완전히 따돌렸다고 생각했는데도 나는 여전히 그 가족의 일원이다..
もものかんづめ(복숭아 통조림) | さくらももこ | 集英社 평범한 일상도 특별한 웃음으로 만드는 사쿠라 모모코의 꾸밈없이 코믹한 날들 속으로! 열여섯 편의 에피소드와 각 에피소드에 대한 후일담 그리고 대담으로 구성돼 있다. 첫 편은 '기적의 무좀 치료(奇跡の水虫治療)'라는 제목의 에피소드였는데, 무좀 치료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작가의 어릴 적 나름의 심각했던 이야기가 너무나도 웃겨서 읽는 내내 큭큭거리기를 수차례! '새벽녘의 중얼거림(明け方のつぶやき)'에서는 작가가 그간 사지 말았어야 했던 물건들에 대한 일화인데, 17살 무렵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밤 12시에 새 거울과 빗을 들고 변소에 가면 결혼 상대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정보를 듣고, 바보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하면서도 다음날 오백 엔을 주고 거울과 빗을 사서 실행에 옮겼던 에피소드를 적고 있다. 어렸을 적 재..
ぼくの小鳥ちゃん(나의 작은 새) | 江國香織 | 新潮社 내게 사소한 행복이 되어준 작은 새와의 '사랑 비슷한' 동거 이야기 추운 겨울날을 배경으로 하지만, 읽는 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동화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작은 새. 한 공간에서 생활하며 잔잔했던 일상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새초롬한 작은 새. 조금은 제멋대로이기도 하고 때로는 질투심 가득한 작은 새. 무척이나 사랑스럽게 느껴져서, 다 읽은 후에도 한동안 마음속에서 기분 좋은 온기를 품게 해 준 작은 새. 부엌 창가, 침대 옆, 세면대 캐비넷 안…, 여자 친구가 장식해 놓은 사진을 매번 쓰러뜨리고는 '실례'라고 한 마디 건네는 요 작은 새의 질투가 어찌나 귀엽던지! 어느 날, 내 일상에도 이런 매력쟁이 작은 새 한 마리가 불시착했으면. あたしはあなたの小鳥ちゃんよね。 - p。119 나는 ..
상실의 시대 | 무라카미 하루키 | 문학사상 젊은 날 슬프고 감미롭고 황홀한 사랑 이야기 예전에 읽었을 때는 별다른 생각 없이 읽고 지나쳤던 것 같은데, 얼마 전 『잡문집』을 읽고 나서 『상실의 시대』를 읽다 보니, 소설 속 주인공인 와타나베 토오루가 상당 부분 하루키 자신과 일치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실제로도 작가 또한 이 소설이 극히 개인적인 소설이라고 말하고 있긴 하지만. 가령 책 읽기를 즐겨한다는 사실, 특히나 기숙사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사귀게 된 나카시마 선배와의 일화는 잡문집에서도 언급한 적 있는 하루키의 『위대한 개츠비』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다. 이 외에도 빨래와 다림질에 대한 일화나, 음악에 대한 이야기 등등. 문득, 이 같은 자전적 소설이 일본을 넘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가 무얼까, 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