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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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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타운 | 프레드릭 배크만 | 다산책방 쇠락한 작은 마을, 베어타운 가슴에 곰을 품은 사람들의 좌절과 용기, 눈물과 감동으로 얼룩진 단 하나의 희망에 관한 이야기 이제 막 베어타운을 벗어나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온 기분이 든다. 베어타운과 그곳 사람들 틈에서 며칠 밤낮을 분노와 좌절, 기대와 감동의 어느 사이를 분주히 헤매며 돌아다녀야 했으므로. 그 숨 가빴던 시간들을 돌이켜 봤을 때,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진부해서 시시하다고… 너무도 작위적인 게 아니냐고 곧잘 불평하기도 했지만, 그곳 사람들에게 하키가 ‘초월을 느끼는 몇 번의 순간들’(p.205)을 위하여 제 몸을 기꺼이 내던지는 인생에서 놓아버릴 수 없는 소중한 보물이듯, 우리 삶에서 희망을 제한다면 도무지 살아갈 의미가 무에 있으랴. 우리 모두는 그 순간을..
떨림과 울림 | 김상욱 | 동아시아 물리학자 김상욱이 바라본 우주와 세계 그리고 우리 물리학자의 시선으로 우리가 사는 세계, 나아가 우주를 헤아려본다. 그 안에서 자연스레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를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이 책은 물리학이 인간적으로 보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p.7)고 앞서 밝힌 바 있다. 체감상 그 거리감으로는 물리나 우주나 크게 다를 바 없는 나로서는 그 말이 터무니없게 들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게 가능하기만 하다면야, 싶은 기대감을 품게 한 것도 사실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역부족이었지만, 이 세계를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을 선사함에 대단히 매력적인 글이었음은 분명했다. 이를테면 죽음과 우주, 그 안의 인간 존재의 이야기가 말이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 죽으면 육체는 먼지가 되어..
거꾸로 읽는 세계사 | 유시민 | 돌베개 우리의 20세기와 전환의 순간들 20세기의 굵직한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드레퓌스 사건을 시작으로 제1차 세계대전의 불씨가 됐던 사라예보 사건, 러시아 혁명과 미국의 공황에서 나아간 세계의 대공황, 중화인민공화국을 탄생하게 한 대장정, 홀로코스트를 자행함으로써 모든 악의 연대를 이끈 히틀러, 나치 친위대의 피해자가 인종 청소의 가해자로 바뀐 비극의 땅 팔레스타인과 베트남의 두 번의 전쟁, 미국의 인종차별에 맞서 백인과의 분리를 주장한 맬컴 엑스와 통합을 주장한 마틴 루서 킹, 냉전시대 군비확장 경쟁의 중심에 있던 핵무기, 독일의 통일과 소련의 해체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사건은 이제 역사가 되어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비추고 있다. 더욱이 아직 그 영향력 아래에서 유효한 사건들..
그냥 하지 말라 | 송길영 | 북스톤 사람들의 마음을 캐는 광부, 송길영이 전하는 새로운 시대, 전문가의 기준 쏟아지는 방대한 데이터 안에서 유효한 정보를 캐내고 그것을 기반으로 사회의 흐름을 알아가는 일에 대하여 저자는 말한다. 그것은 곧 사람과 사회를 이해하는 일이라고. 그렇다면 시대가 요구하는 변화에 부응하는 사람이기 위해 나는 무얼 해야 할까. 저자는 강조한다. 현행화가 중요하다고. 미래를 향한 오늘의 현행화가 곧 혁신일 것이니. Think first. 욕망하기를 멈추지 마십시오. 애초에 멈출 수도 없습니다. 욕망이란 나의 존재가 좀 더 안정되게 유지되길 바라는 소박한 마음에서, 내가 소멸한 후에도 나의 존재가 잊히지 않기를 바라는 본능에서, 나의 자아가 같은 종의 다른 개체들에게 존중받고 영향력을 가지길 바라는 무한한 욕심에서 뿜어..
마음의 심연 | 프랑수아즈 사강 | 민음사 프랑수아즈 사강의 미발표 유작 대저택 라 크레소나드 사람들의 얽히고설킨 이야기가 프랑수아즈 사강 특유의 섬세하면서도 신랄한 문체 안에서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다. 모든 인간사가 그러하듯, 그들 각자에게는 저마다의 사정과 고충이 있고 자신이 소유한 것을 지켜내고자 하는 안간힘이 존재하며 그들 사이에는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엄연한 이해관계가 자리한다. 그와 같은 보편적 요소들은 사강이 포착하고 그려낸 유려한 심리 묘사 안에서 한층 돋보임으로써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특히나 그들이 겪는 혼란과 권태, 환멸은 냉소를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이따금 우리 자신의 삶에서 마주하는 어떤 난관의 발로이기도 한 까닭에 그와 같은 지점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한편으로는 서로가 서로를 보듬고 사랑으로 감싸는 일이란 더없이 아름다운..
작별하지 않는다 | 한강 | 문학동네 이곳에 살았던 이들로부터, 이곳에 살아 있는 이들로부터 꿈처럼 스며오는 지극한 사랑의 기억 불의한 사고로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인선의 간곡한 부탁으로 경하는 엉겁결에 그녀의 제주 집으로 향한다. 홀로 굶주리고 있을 작은 앵무새 아마를 살리기 위하여.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폭설로 인한 궂은 날씨에도 가까스로 제주 공항에 도착한 경하. 그러나 그녀의 혹독한 여정은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입때껏 본 일 없는 무시무시한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가운데, 때때로 고립되는 일이 잦은 중산간 마을에 위치한 경하의 집까지 닿는 일이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는 까닭이다. 더군다나 해는 곧 저물 것이다. 그때의 막막함, 낭패감, 두려움이 무서운 속도로 내 마음을 장악했다. 이게 정녕 경하의 일이기만 할까, 어쩌면 경..
케이크와 맥주 | 서머싯 몸 | 민음사 실존 인물, 문단의 내막 적나라하게 묘사해 세간에 파장을 일으킨 풍자 소설 성공과 창작의 곡예에서 균형을 이루며 살아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케이크와 맥주에 부합하는 삶을 살았던 로지. 세간 사람들은 그녀의 부도덕함을 수군댔지만, 정작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그저 자신이 관심 있고 흥미 있는 것을 향해 나아갔을 뿐. 그렇다고 해서 그녀를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철없는 여인이라고 해두기에도 마땅치 않다. 그녀가 내뱉은 말에 담긴 가치관이 확고한 까닭이다. 그녀는 자신이 추구하는 방식대로 삶을 충실하게 이끌어 간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다른 남자에게 고가의 선물을 받아온 로지에게 어셴든은 분개하며 따지려 들지만, 그녀는 ‘우아하고 상냥하게’ 대응한다. “아이 참, 왜 다른 사람들 일로 속을 ..
1차원이 되고 싶어 | 박상영 | 문학동네 십대들의 사랑이 그려내는 새로운 파문과 깃털처럼 쏟아지는 환희의 순간들! 제 몸에 내는 생채기인 줄 빤히 알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간절함, 그 절박함으로 점철되는 - 깊이 묻어두었던 - 지난날을 마주하게 한다. 말간 얼굴 뒤로 꽁꽁 숨기고 싶었던 그 많은 비밀들을 끝없이 단속해야만 했던 나날이었다고. 발설하고 싶은 일말의 진심마저 애처로이 억누르면서도 어느 틈엔가 새어나가고만 것을 책망하며 무마시키고자 집요하고도 필사적이기도 했던 폭력적이고 잔혹했던 시간들이었다고 자조하면서. 반은 맞고 반은 틀리기도 한 아름다웠다는 말에 가두고 살아왔다는 뜨악한 진실을 마주해야 함에 얼마간은 당혹스러웠던 오늘, 찰나의 달콤함에 기대어 얼마든지 쓰디쓴 밤을 기꺼이 유영할 수 있었던 그때의 내가 안녕하기를 달래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