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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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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 ::헤라클레스의 선택 온종일 어떤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그런 와중에도 시곗바늘은 유유히 제 자리를 찾아 떠나가고, 그 뒤를 망연하게 좇는 짙은 그림자만이 손에 쥔 책 — 『예술의 정원』 루시아 임펠루소 — 안에서 서성인다. 이탈리아 중부 티볼리에 있는 빌라 데스테(Villa D’Este)를 헤매다 마주한 갈림길 앞에서, 어느 길이 선이고 악일지를 가늠해 본다. 참으로 신의 뜻을 헤아릴 수 있을까. 마침 여기에 이렇게 쓰여 있다. "그 길은 알 수 없는 자연과 비밀의 역사를 찾아가는 여정이며, 자연과 영혼에 대한 지식을 추구하는 길이다."(p.69) 미지를 향한 불안과 두려움을 뒤로하고 발을 내딛는다. 네 개의 미로와 십자가 모양의 파고라 돔을 지나며 위대한 헤라클레스의 선택을 소리 없이 칭송한다. 생각은 조금도 줄지 않았다..
진실은 늘 저편의 그늘 아래 이따금 한바탕 휩쓸고 간 뒤의 고요에 대하여 생각한다. 2011년 3월 11일 2시 46분, 그날의 대지진은 거대한 쓰나미를 몰고 왔고 원전 폭발이라는 잇단 참사까지 더해져 부지불식간에 발 딛고 있는 땅을 흉흉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사람들이 쉬이 입밖에 내지 않고 행동으로 드러내지 않았던 경계, 그 극도의 절제 안에 있었다. 그것은 마치 그래야만 이 땅에서 살아갈 자격이 있기라도 하다는 듯 엄격함을 띤 모종의 합의처럼 보였는데, 기이하다 여겨질 정도의 것이기도 해서 십여 년이 훌쩍 지난 내 감각 속에서도 유독 선명하게 남아 있다. 이후 나는 쾌청한 날 잔잔하게 일렁이는 윤슬을 바라보면서도 그 밑의 검은 소용돌이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다. 나라는 사람은 그 속엣것을 들여다보는 ..
하나님은 보뱅의 뜻이었을까 크리스티앙 보뱅이라는 작가를 알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작은 파티 드레스』를 읽고서 책과 독서, 글쓰기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에 매혹됐고,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순수한 문체가 마음을 동하게 했다. 그러므로 그의 또 다른 책을 알아보는 일은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었다. 다만 이 책 저 책 너저분하게 쌓아두고 방랑하며 읽곤 하는 지라, 이번만큼은 읽고 있는 책들을 모두 마치고 홀연한 마음으로 그의 새로운 글을 마주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한동안 책장에 고이 꽂아 두어야만 했던 『환희의 인간』을 오늘에서야 펼쳐 들었다. 마침 연휴 첫날 한가로이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니 마음마저 한결 느긋해져, 그야말로 독서하기 딱 좋은 시간.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첫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