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별별책/2020

(53)
너무 애쓰지 말아요 | 이노우에 히로유키 | 샘터사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최선을 다하려다 지쳐가는 당신 당신의 아픈 마음을 치유하는 30가지 마음 처방전 위로가 절실한 순간이 있다. 그런 때에 마음으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이가 다가와 따스이 손 잡아준다면, 곁에 앉아 조용히 어깨를 토닥여 준다면 그보다 더 큰 위로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지친 나를 포근하게 감싸 안아줄 누군가가 매 순간 존재하기란 사실상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홀로 이 세계 어딘가에서 아픈 마음을 부여잡고 끙끙대는 이들을 위한 책도 필요한 것이리라. 『너무 애쓰지 말아요』가 바로 그 한 권의 책일 수도 있겠다. 나만 해도 기대 없이 펼쳐 들었는데, 프롤로그를 읽는 순간 흡사 내 마음 한구석을 들키기라도 한 듯 잠시 울컥한 마음이 들었으니까. ‘…당신은 지금 모습 그..
양 사나이의 크리스마스 | 무라카미 하루키(글)·이우일(그림) | 비채 아트 컬래버레이션으로 만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동화적 상상력 크리스마스 시즌을 배경으로 저주에 걸린 양 사나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과연 무사히 저주를 풀고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수 있을지, 오랜만에 아이처럼 순수한 감수성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선사해 주었다. ‘양 사나이의 세계가 언제까지나 평화롭고 행복하기를’로 맺는 이야기 안에서, 양 사나이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속한 이 세계의 안녕도 더불어 기원해 보면서. 참고로 『양 사나이의 크리스마스』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오래된 단편(1985년 作)에 일러스트레이터 이우일이 그만의 독특한 개성을 살린 그림을 더해 완성한 책이다. 하숙집에 돌아오자 우편함에 양 그림이 그려진 크리스마스카드가 한 장 들어 있었다. 카드에는 ‘양 사나이 세계가..
다정한 매일매일 | 백수린 | 작가정신 빵과 책을 굽는 마음 산문집 『다정한 매일매일』에 엮인 짤막한 글들은 빵과 책이라는 언뜻 공통분모가 없어 보이는, 그러나 양 쪽 모두를 좋아해 마지않는 작가에 의해 유기적 관계성을 획득하고 있는 이야기들을 선보이고 있다. 이를테면, 빵을 굽고 소설을 써 내려가는 마음에 깃든 온기에 대하여. 그 안에서는 어느 누구라도 허기진 몸과 마음을 넉넉히 달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작가의 소설 아닌 글들을 마주하면서 올해 초와 여름, 그녀의 두 권 책에서 만나온 소설 속 인물들을 떠올리는 일은 매우 자연스러웠다. 평온했던 일상 속 심리적 균열을 일으키는 감정들에 저마다의 방식으로 대응해 가던 사람들이었다. 그들 각자는 어떤 선택을 하든 결국 자신이 맞이할 내일을 묵묵히 맞이하는 편에 서 있었던 존재들이..
인생은 소설이다 | 기욤 뮈소 | 밝은세상 캐리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 의문을 풀어줄 비밀의 방문이 열린다! 요 며칠 손에 쥐고 있던 책을 내려놓으며, ‘인생은 소설이다’라는 제목을 가만히 곱씹어 본다. 작가의 상상력에 기반한 허구의 이야기가 우리 각자의 마음에 가뿐히 안착해 작은 파동을 이뤄내는 그 신비가 새삼 경이로웠던 것이다. 소설의 말미, 테오는 아버지이자 작가이기도 한 로맹 오조르스키의 소설에 대하여 말한다. ‘아버지는 독자들이 잠시나마 실존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등장인물들이 전하는 내밀한 사연, 그들이 겪어가는 파란만장한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소설을 주로 써왔다. 철학적인 고민, 언어의 미학과 예술성을 중요하게 다른 작품들과는 정반대 지점에 위치한다고 볼 수 있’(p.253)다 라고. 입때껏 기욤 뮈소의 소설들을 떠올려 보..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 이병률 | 문학동네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집이 비어 있으니 며칠 지내다 가세요’라 건네는 시인의 첫말이 포근하게 다가오는 시집,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바다는 왼쪽 방향이고 슬픔은 집 뒤편에 있’다고 덧붙인 말 안에 스민 지극한 배려가 어수선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애써 외면하고 또 그런 식으로 잊으려 했던 나의 슬픔을 가만히 응시하게 한다. 살피고 보듬게 만든다. 그야말로 시집 자체가 나에게 하나의 온화한 집이 되어준 셈이다. ‘그 집에 살다 가세요’라고 말해주는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산란했던 마음이 한결 놓이고 말았으니까. 삶에 짊어진 슬픔을 시인이 창조해 낸 시적 언어 안에서 위로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어찌나 놀랍고도 멋진 일인지 새삼 감탄하면서. 이 생에서는 실컷 슬픔을 상대하고 단 한 줄로..
명랑한 은둔자 | 캐럴라인 냅 | 바다출판사 혼자의 삶 한때의 중독과 강박에서 벗어나, 자신을 보다 이해하고 아끼며 사랑하는 편으로 나아가고자 부단히 애쓴 캐럴라인 냅. 그녀의 솔직한 자기 고백 안에서 나는 한 인간으로서 숙명적으로 감당해야만 하는 삶의 무게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지극히 보편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매우 예민하고 은밀한 문제여서 쉽사리 겉으로 드러낼 수 없는, 그리하여 온전히 자기 자신만이 감당해야 할 몫이었던 그것에 대하여. 『명랑한 은둔자』라는 제목으로 엮인 글들은 바로 그 지점에 대해 작가가 품었던 고민의 흔적인 동시에 극복의 기록이기도 해서, 역시나 크고 작은 고민에 직면해 있는 내게 한층 유의미하게 읽혔는지도 모르겠다. 더욱이 혼자의 삶을 고수한 그녀 앞에 늘 숙제처럼 놓였던 고독과 고립 사이의 이야기는 ..
공부란 무엇인가 | 김영민 | 어크로스 평생 공부하는 삶은 우리에게 어떤 탁월함을 선사할까? '생각의 근육'을 길러주는 서울대 김영민 교수의 통찰 무언가 얻고자 하는 것을 위해 정진한다는 일이 흔히 말하는 공부일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태어나 죽는 순간까지 게을리해서는 안 될 그것을 과연 어떤 식으로 행해야 현명한 걸까. 지난날 대개의 공부란 것은 늘 결과에만 집중해 있었다. 물론 그것의 중요성을 아예 배제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지만, 수단으로써의 공부에만 치중한 나머지 그 목적성과 순수성을 잃은 것은 그 무엇이 됐든 께름칙함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아마도 그즈음이 개인적으로는 대학에 들어가고 어느 정도의 해방감을 만끽한 뒤 한 숨 돌리던 차에 처음 의식됐던 걸로 기억한다. 그것은 곧 지금까지의 공부가 내가 한 것이 맞기는 하지만 스스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 공지영 | 위즈덤하우스 나를 사랑하기 위한 노력의 기록 공지영 작가가 섬진강 근처로 보금자리를 옮기고서 스스로를 보듬고 사랑으로 감싸 안고자 노력해온 나날에 대해 풀어쓴 에세이집이다. 그렇기에 가만히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적잖이 마음 공부가 된다. 그중에서도 가장 와닿았던 것이 바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 위한 일에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대목이었다. 돌이켜보면, 스스로를 아끼기보다는 몰아세우기에 바빴던 지난날의 기억이 선연하다. 어쩌면 나는 일상에서 불가피하게 마주할 수밖에 없는 지치고 힘든 일들에 대하여 미워하고 성낼 대상이 필요했고, 그건 곧 나 자신이어야만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게 가장 쉽고 간단했을 테니까. 그러나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지! 스스로를 미워하는 일만큼 비극은 없다. 다른 누구도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