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허수경

(2)
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 | 허수경 | 난다 그리움은 네가 보다 내 안에 더 많아질 때 진정 아름다워진다 이 책은 그 아름다움을 닮으려 한 기록이다 지난달 초 허수경 시인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고, 나는 때 이른 죽음이라고 혼자서 안타까워했다. 책장에 꽂혀 있던 시집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를 꺼내어 몇몇 시들을 잠시 살펴보았는데, 애써 담담하지만 지독하게 쓸쓸해서 누군가에게 하다못해 허공에 대고서 라도 입을 떼야할 것 같은 절박함이 전해 왔다. 두 해 전 나는 그것에 대하여 계절의 탓이라고 했지만, 한층 내 안에서 공고하게 자리 잡은 외로움은 별안간 들려온 시인의 소식과 맞닿아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었음을 상기시켰다. 그러고는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하염없이 그 누군가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한 감정에 내몰렸다. 요 며칠, 그런 시인의 시..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 허수경 | 문학과지성사 영원히 역에 서 있을 것 같은 나날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기차는 왔고 나는 역을 떠났다 시계판 속 바늘은 1은 2를 향해, 2는 3을 향해…… 11은 12를 향해, 그리고 12는 다시 1을 향해, 끝없이 반복한다. 그것을 물끄러미 응시하게 되는 순간, 그 찰나에 품었을 나와 당신, 고독과 공허, 사랑과 이별, 삶과 죽음에 대한 시(詩)가 한데 모였다. 잘 지내시길, 이 세계의 모든 섬에서 고독에게 악수를 청한 잊혀갈 손이여 별의 창백한 빛이여 - 「섬이 되어 보내는 편지」 중에서 우리는 알고 있다. 숨이 붙어 있는 한, 시계판의 굴레에서 끝끝내 벗어나지 못할 운명들임을. 그러므로 그 숨이 붙어 있는 한, 어디로든 발걸음을 떼야만 하는 존재들임을.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숙명인 것을. 그 앎이 지금 내 영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