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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19

태엽 감는 새 연대기 | 무라카미 하루키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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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세계의 태엽을 감는 것은 누구인가?
수수께끼와 탐색의 집요한 연대기

 

 

 

어느 날 홀연히 출근 모습 그대로 사라진 아내를 되찾기 위한 한 남자(오카다)의 지난한 여정을 그린 소설이다. 그 녹록지 않은 과정에 비례하는 방대한 양은 늘 그래 왔듯, 견고한 짜임새와 흥미로운 이야기 안에서 한시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더불어 우리가 삶 안에서 이따금 마주하곤 하는 어떤 –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흘러가는 – 기이한 흐름들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하게 한다.

 

이를테면, ‘어딘가 멀리서 뻗어 나온 긴 손’(p.837)에 대한 것이 그렇다. 옅은 의구심에 고개를 갸웃하며 혹은 까맣게 모르고서 지나쳐 온 일들이 실은 투명한 줄에 줄줄이 매달린 하나의 뭉텅이였음을 깨닫는 찰나에 대한 이야기다. 그것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나를 완전히 지배하고 있’(p.836)어 왔고, ‘내 인생이란 게 그런 일들을 통과시키기 위한, 그저 편리한 통로에 지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p.836) 마저 하게도 하는 순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넛메그의 생각은 오카다로 하여금 불길한 그림책의 삽화를 떠올리게 만든다. 그러나 불길한 삽화는 상상 속 이미지에만 머물지 않고, 오카다에게 엄연한 현실로 다가온다. 지켜야 한다고 믿는 것을 위해 분투할 수밖에 없는 녹록지 않은 운명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것을 비단 오카다에게 국한된 이야기로 한정 지을 수는 없다. 삶 안에서 맞닥뜨린 어떤 상황, 그리고 무언가를 위해 묵묵히, 때로는 격렬하게 대응해 나간 것은 구미코도 그랬고, 가노 자매, 넛메그와 시나몬, 가사하라 메이 역시 마찬가지인 이유다. 동시에 그들 모두 이러니 저러니 해도 자신의 삶을 지속시키고 있다.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그런 것이라고, 그런 통과의례의 시기를 통해 한층 단단해지고 견고해질 수 있는 것임을 다시금 상기하게도 한다.

 

때때로 자신의 자유의지를 시험하는 것들로부터 무력감을 느끼면서도 자기라는 존재의 이유를 찾고자 부단히 애를 쓴다는 것에 대하여 생각하게 하는 소설, 『태엽 감는 새 연대기』. “태엽을 감는 새가 태엽을 감지 않으면, 세계가 움직이지 않아.”(p.497)라 했던 그 한 문장이 가슴 한 켠에 선명하게 남는다.

 

 

 

“태엽을 감는 새가 태엽을 감지 않으면, 세계가 움직이지 않아. 그런데 아무도 그걸 몰라. 세상 사람들은 모두 훨씬 더 복잡하고 멋들어지고 거대한 장치가 세계를 빈틈없이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그렇지 않아. 사실은 태엽 감는 새가 온갖 장소에 가서, 가는 곳곳마다 조금씩 태엽을 감기 때문에 세계가 움직이는 거야.”    - p.497 (2부)

 

 

 

 

 

태엽 감는 새 연대기 (합본 특별판) - 8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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