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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19

착한 여자의 사랑 | 앨리스 먼로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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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현대 단편소설의 거장 앨리스 먼로가 보여주는 
인간 본성에 대한 탐색과 통찰!

 

 

얼마간은 비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무엇도 쉬이 단정 짓지 않는다. 비슷한 선상에서 절대적이라는 말 역시 신뢰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은 모호한 것 투성인 삶이 가지는 속성과 불완전한 인간 존재의 본성에서 기인한다고 여기면서. 앨리스 먼로가 1998년 발표한 이 단편집에 엮인 여덟 편은 그것에 대한 이야기랄 수 있겠다. 절대적으로 선한 이도, 악한 이도 존재하지 않는 지극히 평범한 인물들로 채워진 세계 안에서 그들은 단지 어떤 상황 하에 놓여있을 뿐이다. 때론 순조롭기도 어떤 때에는 전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하지만, 그 흐름에 적당히 몸을 맡긴 채로 살아간다.

 

『행복한 그림자의 춤』을 시작으로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 사랑』, 『디어 라이프』 그리고 최근 새로이 발간해 읽은 『착한 여자의 사랑』까지, 이 네 권에 실린 오십 편 가까이의 단편을 읽으면서 앨리스 먼로의 소설이 가지는 매력에 대해 다시금 감탄하게 된다. 사실 모름지기 소설이라 하면 의례히 흥미로운 스토리를 기대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앨리스 먼로의 소설은 - 단편이라는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 그 스토리 자체에서는 그다지 흥미를 갖기 어렵다. 그것은 너무도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인생의 한 시기 혹은 그런 나날을 그리고 있는 탓인데, 심지어 극적인 상황이나 놀라운 반전, 지극한 감동 또는 처절한 배신 등의 장치 역시 돋보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거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겪는 어떤 사건들은 그 뒷얘기를 몰라도 그만이라는 생각마저도 들게도 한다. 그러나 그 어떤 소설에도 가지지 못하는 독보적인 매력이 앨리스 먼로의 소설에 존재한다. 그것은 다름에 아닌 인물들의 절묘한 심리 묘사에 있다. 이를테면 인물들이 느끼는 어떤 생각과 심경은 한순간의 것이어서 뒤돌아서면 쉬이 잊고 말, 어쩌면 인지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찰나의 것인데, 그 흘러 보내기 쉬운 것을 기어코 포착해내고 마는 데에 독보적인 것이다. 특히나 그런 순간들은 지리멸렬한 일상 속 어떤 상황과 사건 하에서 느끼는 감정들, 주로 의뭉스럽고 때론 비천하기도 한 속내들의 가감 없는 묘사에서 한층 빛을 발한다.

 

이 같은 저자의 섬세함을 넘어서는 예리함은 삶을 향한 작가의 통찰력에서 비롯하기에 여태껏 그래 왔듯, 새삼 감탄하는 동시에 경외심마저 품게 한다. 가히 매혹적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 덧붙일 말이 없달까. 그 신기에 가까운 묘사를 마주하는 일이 적어도 앨리스 먼로의 소설 안에서는 그 어떤 것보다도 내겐 중요시된다.

 

 

 

#. 착한 여자의 사랑

 

세상에 두 부류의 인간, 그러니까 비밀을 품고 사는 이와 그러지 못하는 이가 있다고 치자. 그런데 종국에는 한 부류의 인간만이 남는다 ― 고 확신한다 ―. 비밀의 무게가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더 입을 꾹 다물었다 가도 속절없이 맥이 확 풀리듯 놓아버리고 마는 순간들이 우리 삶엔 왕왕 있기 마련인 이유다. 더욱이 인간이라는 존재는 하다못해 허공에 대고서 라도 비밀을 털어놓아야만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던가. 검안사 윌렌스처럼 죽은 자만이 오직 입을 꾹 다물뿐, 강둑에 놀러 갔던 소년들도 루퍼트와 그의 부인을 간호 중인 이니드도 죽음을 눈앞에 둔 퀸 부인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비밀은 곧 마음의 짐이기도 해서 그것을 영영 끌어안은 채 살아갈 수 있는 이는 세상 어디에서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거의 희박에 가깝다는 어떤 진실을 마주한 까닭이다. 이 짧은 소설을 통해 인간 존재의 본성, 즉 욕망의 일면을 확인한 듯도 하다.

 

 

 

그가 자신이 유리한 입장임을 깨닫는 순간 그녀는 그 이야기를 꺼낼 것이다. 그에게 물어볼 것이다. 그게 사실인가요? 사실이 아니라면, 그는 그런 걸 물어봤다는 것 때문에 그녀를 미워할 것이다. 사실이라면 ― 그녀는 줄곧 그게 사실이라고 믿지 않았던가? ― 그는 다른 방식으로, 더 위험한 방식으로 그녀를 미워할 것이다. 그 즉시 그녀가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말하지 않겠다고 – 그건 진심이고, 정말 진심일 것이다 ― 말하더라도. (…) 나는 말하지 않겠지만, 당신이 말할 거예요. 그런 비밀을 품고 살아갈 순 없으니까. 이 세상에 그런 마음의 짐을 끌어안은 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자신의 삶을 견디지 못할 거예요.    - p.122 「착한 여자의 사랑」

 

 

 

 

 

착한 여자의 사랑 - 10점
앨리스 먼로 지음, 정연희 옮김/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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