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사람의 죽음으로 알게 된 슬픔
그 슬픔 끝에서 고개를 내미는 일상
가까운 이의 죽음을 맞닥뜨리고 보내드리는 일은 마치 세탁하는 것과도 비슷하지 않을까, 엉뚱한 생각을 해봤다. 기왕이면 세탁기 말고 정성스레 손빨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세제를 적당히 푼 미지근한 물에 빨랫감을 잠시 담가 두었다가 얼룩지고 때 묻은 부분을 손수 맞잡고 비빈다. 몇 차례에 걸쳐 거품을 빼고 비로소 깨끗해진 세탁물은 옷감이 변형되지 않도록 조심스레 힘 조절을 해가며 물기를 빼, 서너 번 공중에서 털어 빨랫줄 위에 넌다. 하루 이틀 꼬박 잘 말린 옷은 반듯하게 다림질해 옷걸이에 걸어두고, 또 어떤 옷은 잘 개서 서랍장에도 넣는다. 이렇게 품을 들이는 과정을 통해야만 끝이 나는 손세탁처럼,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 역시 어떤 식으로든 충분히 정성을 쏟아야만 온전히 보내드릴 수 있는 거라고, 고인 역시 홀가분하게 저편으로 떠날 수 있는 거라고, 삼촌에 이은 아버지의 죽음을 마주하며 적어 내린 마스다 미리의 글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문득 해봤다.
『영원한 외출』을 읽는 동안, 읽고서도 한동안 내 마음은 조금 떨렸고, 많이 뭉글했다. 영원한 외출은 이 세상과의 영영 이별이었고 그 상대는 몹시도 성미 급한 그래서 때로는 이해할 수 없었던, 그럼에도 언제고 곁에서 우뚝 서 있길 바라 마지않던 아버지였다. 자연스레 저자에 감정이입 했는데, 담담한 어조에서 묻어나는 슬픔과 후회, 그리움의 감정이 한층 짙게 내 편으로 흘러 들어온 것은 그것이 삶의 일부임을 너무도 잘 알기에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는 아버지의 영원한 외출을 배웅한 뒤, 마음속의 구멍을 들여다본다. 섣불리 그 크기도, 깊이도 헤아릴 수 없는 구멍은 그저 뻥 뚫렸다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막막함과 공허함의 또 다른 이름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그 전과 다름없이 그림을 그리며 글을 쓰는 일과 피아노 학원을 다니는 일을 이어가는 일상을 살아간다. 함께 웃고 기뻐했던, 서로를 위하고 다독이던, 심지어 성내고 싸우던 기억마저도 보태 져 뚫린 마음속 구멍이 천천히 아주 조금씩 메워질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는 듯이 일상을 살아간다. 그렇게 애쓰는 마음은 아버지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쌓아온 견고한 시간들에서 비롯하리라.
결국 마음속 뻥 뚫렸던 구멍은 추억에 비례하는 애정의 또 다른 형태였고, 남은 사람은 그 안에서 그리움을 느끼는 한편 차츰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렇게 여전히 일상을 살아간다. 그 삶, 기왕이면 곡절 없이 잘 살아가야겠다고, 다짐도 하게 한다.
마음속에 구멍이 뚫린 것 같다는 비유를 하지만, 아버지의 죽음으로 내 마음속에도 구멍이 뚫린 것 같았다. 그것은 그리 크지 않은 나 혼자 쑥 내려갈 수 있을 정도의 구멍이다. 들여다보면 바닥은 보이지 않는다. 깊이도 알 수 없다. 한동안은 그 구멍 앞에 서 있기만 해도 슬펐다. 그것은 추억의 구멍이었다. 구멍 주위에 침입방지 철책이 있어서 안으로는 도저히 들어가지 못한다. 하지만 얼마간 서 있다가 침입방지책을 넘어서 구멍 속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한다. 이런 일도 있었지, 저런 일도 있었지, 한 칸 한 칸 내려가면서 그리워하고, 후회한다. 눈물이 끓어오르기 전에 서둘러 계단을 내려간다. 그리움과 후회를 반복하며 조금씩 깊이 내려가면 한동안 구멍 속에서 가만히 있을 수 있게 된다.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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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외출 - ![]()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이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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