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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연한 푸른빛의 슬픔 위에 그려내는
우리가 잃어버린 기회들, 우리가 구해야 할 대답들
지난한 삶에도 엄연하게 맞이하는 결정적 순간은 있다. 비록 의도하지 않았거나 그 시작은 작고 미미했을지라도 혹은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인생의 향방을 바꾸어 놓는 전환점과도 같은 순간 말이다. 그때에 누군가는 비로소 붙들려 있던 것으로부터 놓여나기도 하는 반면 오랜 시간 슬퍼하고 후회하며 고통스러워하는 수도 있다. 그렇게 저마다 푸른 들판을 걷듯 제 삶을 묵묵히 걸어 나간다.
클레어 키건의 초기 단편들을 엮은 『푸른 들판을 걷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저마다 그 결정적 순간을 경험하고 있다. 그 안에서 이들이 사로잡혔던 생각과 감정들은 비단 그들만의 것이 아닐진대, 이는 곧 각자가 마주하는 상실과 발견, 그 너머의 치유에 이르는 과정이기도 한 까닭이리라.
디건은 무감각하지만 전보다 가벼워진 느낌이다. 과거의 고역은 사라졌고 새로운 일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길 웅덩이에 불길이 비쳐 은처럼 밝게 빛난다. 디건이 생각을 붙잡는다. 그에게는 일이 있고, 이건 그저 집일 뿐이고, 그들은 살아 있다. - p.141, 「삼림 관리인의 딸」
푸른 들판을 걷다 -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다산책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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