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ove does not confuse everything,
but mixes.”
일본의 저명한 괴테 연구자인 히로바 도이치는 결혼 25주년을 맞이하여 아내 아키코와 함께 딸 노리카에게 이끌려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간다. 그곳에서 식사 후 디저트를 즐기던 노리카와 아키코는 홍차 티백 꼬리표에 인쇄된 글자에 관심을 보이는데, 마침 도이치가 마시던 홍차 티백 꼬리표에 적힌 ‘Love does not confuse everything, but mixes.’와 그 아래 적힌 ‘Goethe’라는 글자는 그와 괴테 사이의 특별한 인연을 새삼 상기시키며 마음속을 흔든다. 그리하여 티백 꼬리표에 적힌 문장의 출처를 찾고자 괴테 전집을 뒤지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청해 보지만 답보 상태는 이어진다. 하지만 그럴수록 지난 세월 괴테 연구에 매진했던 자신의 연구를 아우르는 궁극의 한 문장이 될 것을 예감하는 한편, 자신이 지금 애타게 찾아 헤매는 과정 자체에 어쩌면 모든 것을 말한 괴테를 향한, 나아가 이 세상에서 끝없이 순환하며 반복돼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무한한 진리가 담겨 있음을 깨우친다.
그 여정 안에서 “말”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일상적으로 내가 하는 말과 타인의 말, 그 밖에 이 세상을 떠돌고 있는 무수한 말들은 과연 어디에서 시작돼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걸까. 도이치는 도저히 찾을 수 없는 티백 꼬리표에 적힌 명언의 출처를 확신하지 못한 채, 방송국 프로그램 녹화 현장에서 괴테의 말이라 덧붙이며 ‘사랑은 모든 것을 혼동시키지 않고 혼연일체로 만든다.’는 문제의 명언을 내뱉고 말았다. 모든 말은 이미 존재했지만 어느 순간, 자신의 언어를 통해 비로소 의미를 가지고 진실이 될 수 있음을 그때 도이치는 낭패감과 동시에 어렴풋하게나마 깨우치지 않았을까. 결국 홍차 티백 꼬리표에서 시작된 그의 여정은 잠정적으로 “말은 전부 미래로 던져진 기도”(p.239)라 결론지으며 맺고 있다. 말에 대한 예찬과 그럼에도 그것이 지닌 한계를 언어와 믿음을 통해 극복하고자 했던 장인이자 스승인 마나부의 한 마디가 결정적이었으리라. 도이치뿐 아니라 우리는 모두 “지금 내가 말하는 한계를 지닌 언어를, 성령께서 번역해 신께 전해”줌으로써 “뭐가 어찌 됐든 모든 게 좋아지리라고 믿는 것. 어쩌면 모든 말은 어떤 형태로든 기도가 되려”(p.154) 함을 수긍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 가운데서 무한하게 순환하듯 명백을 유지하는 말의 신비를 마주한다.
자신의 명언 찾기는 결코 의미 없는 짓이 아니었다. 모든 것은 반드시 이어져 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무언가로부터 생겨났고, 우리는 아직 살아 있으니까. - 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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