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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언저리에서 행하는 특별한 서비스
엄연한 현실의 일임에도 도무지 믿기 힘들 때가 있다. 이게 진짜냐고, 차라리 픽션이라고 하는 편이 한결 납득이 가지 않겠느냐고 반문하게 만드는 그런 일들. 죽은 자의 집 청소, 이른바 특수청소라는 업이 내게는 그렇게 다가왔다. 가령 일본 소설 속 주인공이 맞닥뜨린 상황이라고 하는 편이 더 그럴싸한 느낌이었달까. 그런데 생각해 보면 대개의 믿을 수 없는 현실의 이야기란, 일상의 것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어딘가 마뜩잖은 구석이 있어서 – 의도를 가지고 있든 무의식이든 간에 – 비현실의 일로 미루어 두려는 심리 기제가 발동한 경우가 아닐는지. 말하자면 구태여 알고 싶지 않은 일, 차라리 모르는 걸로 치부하고 싶은 일들 말이다. 『죽은 자의 집 청소』를 손에 쥐고 있는 동안 내가 마주해야만 했던 것은 바로 그 지점에서 애써 외면해온 – 죽음의 결정으로 드러나는 – 삶의 민낯이었는데, 그 안에서 아주 조금 비겁 했고 그보다 더 슬프고 고통스러웠으며, 몹시도 쓸쓸한 그들의 얼굴을 떠올려야만 했다.
그의 쓰레기를 대신해서 치우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내 삶에 산적한 보이지 않는 쓰레기를 치우는 것 같다. 내 부단한 하루하루의 인생은 결국 쓰레기를 치우기 위한 것인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해답도 없고 답해줄 자도 없다. 면벽의 질문이란 으레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질문이 또 다른 질문을 끊임없이 초대하는 세계, 오랜 질문들과 새로운 질문들이 만나 서로 인사를 나누고 건배를 제창하는 떠들썩한 축제 같다.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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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집 청소 - ![]() 김완 지음/김영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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