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6/12

(6)
사랑이라니, 선영아 | 김연수 | 문학동네 사랑 따위는 하지 않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마음이 없다면 소주를 살 일도, 노래를 부를 일도, 춤을 출 일도 없을 텐데. #. 01 소설의 마지막 문장까지 막 읽고서, '사랑이라니, 선영아'라고 붙인 책 제목의 절묘함에 감탄했다. 어찌 보면, 주요 등장인물 중 한 명인 광수가 내뱉은 대사를 그대로 사용한 것이어서 별스러울 것도 없으련만, 새삼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쳤던 것. 왜일까. 아마도 선영을 사이에 두고 옥신각신 사랑을 떠들어 대는 광수와 진우의 모습에 더없이 잘 어울렸다고 느꼈던 것 같다. 적당히 진지하면서도 전체적으로는 경쾌함과 유쾌함을 잃지 않는 흐름까지도 내포한 제목이라니, 반할 수밖에. #. 02 '사랑'의 속성과 본질에 대해 말한다. 그것은 곧 소설가 김연수가 말하는 사랑론(論)일..
숨결이 바람 될 때 | 폴 칼라니티 | 흐름출판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예전에 내가 맡았던 환자들처럼 나는 죽음과 마주한 채 내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했다." - p.169 『숨결이 바람 될 때』는 전도유망한 신경외과의에서 암환자가 되어 투병 생활을 하게 된 젊은 의사의 마지막 2년의 시간을 담은 기록이다. 이 책에서 주목할 점이라면, 단연 삶과 죽음의 기로에선 한 인간의 모습에 있다. 중병의 선고는 어느 누구에게라도 충격과 두려움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넋 놓고 좌절하고 있지만은 않는다. '내가 이 직업을 택한 이유 중 하나는 죽음을 뒤쫓아 붙잡고, 그 정체를 드러낸 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똑바로 마주 보기 위해서였다.(p.105)'라고 고백했던 대로 그는, 자신의 죽음 앞에서 역시 다..
노르웨이의 숲(30th 기념 리미티드 에디션) | 무라카미 하루키 | 민음사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노르웨이의 숲』 30주년 기념 리미티드 에디션이 발간된다는 소식을 듣고도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문학사상사의 『상실의 시대』와 일서 문고판(상·하)이 이미 책장에 꽂혀있고 시간의 텀을 두고 너댓번은 족히 읽은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옷을 입고 반기는 마케팅의 꼬임에 넘어갈 수밖에……. 그래도 기존 소지하고 있는 『상실의 시대』가 유유정 번역이라면, 30주년 『노르웨이의 숲』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양억관 번역의 책이기에, 그것만으로도 어디냐며 그렇게 소장을 위한 합리화는 순식간에 완료됐다. 이참에 새 책으로 한 번 더 읽어봐야지, 마음 먹으면서. 그런데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말한 문학적 건망증이 다분해서 그런가, 다시 읽어도 지루하단 생각은 커녕 ..
죽음의 수용소에서 | 빅터 프랭클 | 청아출판사 죽음조차 희망으로 승화시킨 인간 존엄성의 승리 정신 의학자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이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지냈던 경험을 바탕으로 펴낸 책이다. 강제수용소에서의 체험, 로고테라피의 기본 개념, 비극 속에서의 낙관(1983년 6월 서독 레젠스부르크 대학에서 열렸던 제3회 로고테라피 세계대회에서 발표한 주요 내용)을 차례로 담고 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 니체 (Nietzsche)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강제수용소에 갇혀 혹독한 시간을 보냈던 그가, 이후 그곳에서의 자전적 체험을 바탕으로 남긴 한 권의 메시지는 오늘날 각자의 감옥에서 고군분투하는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말한다. 어떤 시련의 순간에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은 지켜내야..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 허수경 | 문학과지성사 영원히 역에 서 있을 것 같은 나날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기차는 왔고 나는 역을 떠났다 시계판 속 바늘은 1은 2를 향해, 2는 3을 향해…… 11은 12를 향해, 그리고 12는 다시 1을 향해, 끝없이 반복한다. 그것을 물끄러미 응시하게 되는 순간, 그 찰나에 품었을 나와 당신, 고독과 공허, 사랑과 이별, 삶과 죽음에 대한 시(詩)가 한데 모였다. 잘 지내시길, 이 세계의 모든 섬에서 고독에게 악수를 청한 잊혀갈 손이여 별의 창백한 빛이여 - 「섬이 되어 보내는 편지」 중에서 우리는 알고 있다. 숨이 붙어 있는 한, 시계판의 굴레에서 끝끝내 벗어나지 못할 운명들임을. 그러므로 그 숨이 붙어 있는 한, 어디로든 발걸음을 떼야만 하는 존재들임을.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숙명인 것을. 그 앎이 지금 내 영혼..
소설가의 일 | 김연수 | 문학동네 오직 '쓰는' 작가, 김연수가 말하는 창작의 비밀 + 신인(新人)의 비밀! 소설가 김연수의 소설 속 문장이 아닌 문장을 읽는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새로웠다. 소설가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벽 ― 경외심을 품게하는 문장을 만나는 것과 비례해서 높아져만 가던 ― 에 창문 하나가 생긴 느낌이랄까. 그래서 그 가로막힘이 더 이상 답답하지만은 않게 된 상태. 그러니까 말하자면, 산문집 『소설가의 일』은 소설가와 나 사이를 이어주는 작은 통로와도 같은 역할의 책이었다. 그 덕에 바라봄의 대상에 한결 친근감이, 흥미로움이 생겼다. 앞으로 읽게 될 문장들이 한층 기다려지기도 하고. 사실 한 달 전쯤 Axt 8호에 실린 김연수 작가의 인터뷰를 읽었을 때 역시 비슷한 느낌이었다. 작가의 입을 통해 직접 듣는 소설과 소설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