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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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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옳다 | 길리언 플린 | 푸른 가장 짧고 가장 섬뜩하고 가장 강렬하다 수전을 믿어요, 나를 믿어요? 누구 말을 믿을 지는 아줌마 마음에 달린 거죠. 마일즈의 당돌한 물음이 당혹스럽다. 그것은 느닷없이 뒤통수 한 대를 갈겨 맞기라도 한 듯한 의식의 각성을 동반한다. 누구의 말이 맞는지, 진실의 진위 여부를 알아채고자 하는 노력조차 무의미하게, 이야기는 제 말만 하고 가차 없이 마침표를 찍고 있기에 한결 막막하기까지 하다. 물론 소설 속 ‘나’ 역시 혼란스러워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녀는 외려 쉬이 마음을 결정한 듯 보인다. 어쩌면 그녀가 놓인 처지는 파헤쳐 진실을 아는 것 보다 이렇게 된 이상 마일즈의 말이 진실이기를, 아니 그래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편이 낫겠다는 판단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사건에 일절 연루되..
좀도둑 가족 | 고레에다 히로카즈 | 비채 가족을 넘어 ‘인연’을 말하는, 여름을 닮은 소설! 세상을 바라보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시선과 감성을 좋아한다. 거창하고 대단한 무언가가 아닌, 우리 주변 어디에서 일어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법한 평범하고 소박한 소재를 더없이 잘 풀어내는 이유다. 더욱이 가족이란 무엇일까, 그 의미를 되새겨 보게 하는 작품들이 눈에 띄는데, 뒤바뀐 아들을 대하는 부모의 심정과 심경의 변화를 통해 자식과 부모의 관계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했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와 배다른 동생을 받아들이는 세 자매가 비로소 네 자매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린 『바닷마을 다이어리』가 우선적으로 떠오른다. 최근 『어느 가족』이라는 타이틀로 개봉한 영화 역시 비슷한 선상에 있다. 『좀도둑 가족』은 영화 『어느 가족』을 고레에다 감..
아흔일곱 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 | 이옥남 | 양철북 아흔일곱 살, 한 사람의 기록 올해로 아흔일곱 살인 이옥남 할머니가 1987년부터 서른 해가 넘도록 써온 일기를 추려 펴낸 책이다. ‘책을 내면서’에서 밝히듯, 할머니는 ‘남편이 저 세상 가고 나 혼자 살다 보니 적적해서 글씨나 좀 나아질까 하고 도라지 까서 판 돈으로 공책을 사서 쓰기 시작한 것이 손주가 그것을 일기라고 소문을 내서 이렇게까지 되었’다고 적고 있다. 그 ‘고맙기도 하고 민망스럽기도(p.212)’하다는 할머니의 일기장이 전하는 온기가 마음을 따스하게 하는 한편 코끝을 찡하게 한다. 그것은 흙 한 줌, 곡식 한 알도 허투루 보지 않으며, 지저귀는 새소리에 애달파하기도, 한겨울의 산짐승에 마음을 쓰기도 하는 할머니의 정겹고 따뜻한 마음씨 때문이리라. 더욱이 소박한 일상 속에서도 도시로 나간 ..
먹는 즐거움은 포기할 수 없어! | 구스미 마사유키 | 인디고 『고독한 미식가』 원작자의 식욕 자극 에세이 『고독한 미식가』의 원작자가 이야기하는 미식 에세이, 『먹는 즐거움은 포기할 수 없어!』. 고기구이를 시작으로 라면, 돈가스, 도시락, 샌드위치 등 스물여섯 가지의 음식을 다룬다. 여기에 등장하는 음식들은 어쩌다 먹는 귀한 음식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일상에서 쉬이 먹곤 하는 것들에 가까워 한결 친숙하게 다가온다. 물론 일본인 저자의 특성상, 우리에겐 다소 익숙지 않은 나폴리탄, 낫토, 튀김덮밥, 오차즈케 등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워낙 일본으로의 여행이 빈번한 시대 이거니와, 기회가 닿는다면 그곳에서 저자처럼 이 음식들을 즐겨보겠다는 요량으로 읽어도 좋을 법해서 흥미롭다. 더욱이 생선회의 경우, 와사비를 푼 간장에 살짝 찍어 먹는 일본식과는 달리 초고추장을 듬뿍 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