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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22

키친 | 요시모토 바나나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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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바나나 열풍을 일으킨 일본 신세대 문학의 신화
요시모토 바나나의 대표작

 

 

 

할머니를 영영 떠나보낸 미카게는 걷잡을 수 없이 널뛰는 감정들에 곤혹스러워하며 신에게 빈다. “아무쪼록 살아갈 수 있도록.”(p.50) 그러나 그 기도는 사실 자신을 향한 주문이고 다짐이지 않았을까. 나는 그 순간에 그녀가 텅 빈 집이 아니라 유이치와 에리코 씨가 있는 집으로 향할 수 있었다는 게 어찌나 다행스러웠는지 모른다. 분명 상심의 고통 속에서도 적잖은 안도가 됐으리라. 떠나간 이에 대한 극심한 슬픔을 견뎌야 하는 것은 오직 스스로가 감당해야 할 몫이지만, 곁에 누군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필시 위로가 됐을 것이니 말이다. 후일, 갑작스러운 사고로 아빠였다가 엄마가 된 에리코 씨를 떠나보냈을 때의 유이치 역시 미카게의 존재가 그렇게 다가왔으리라.

「키친」과 「만월(키친 2)」에 이은 「달빛 그림자」까지, 세 편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 속에서도 묵묵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상실감을 극복해나가는 이들을 그리고 있다. 그 안에서 자연스레 마음이 달아오르는 것은 삶 속 죽음이라는 이별 앞에서 느끼는 고통의 무게를 알고, 또한 그 고통을 외면하고 회피할 수 없는 우리의 운명을 아는 이유일 것이다. 

부디 상실 앞에서 모두가 애도하는 마음을 아끼지 말았으면. 그 과정 안에서 지친 심신 역시 제대로 치유받고 좋은 기억들만을 간직할 수 있기를. 그렇게 “아무쪼록 살아갈 수 있도록.”

 

 

 

사람들은 모두, 여러 가지 길이 있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선택하는 순간을 꿈꾼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러나 지금 알았다. 말로서 분명하게 알았다. 길은 항상 정해져 있다, 그러나 결코 운명론적인 의미는 아니다. 나날의 호흡이, 눈길이, 반복되는 하루하루가 자연히 정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에 따라서는 이렇게, 정신을 차리니 마치 당연한 일이듯 낯선 땅 낯선 여관의 지붕 물구덩이 속에서 한겨울에, 돈까스 덮밥과 함께 밤하늘을 올려다 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 아아, 달이 너무 예쁘다.    - p.130, 131

 

 

 

 

 

키친 - 6점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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