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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삼 년간의 밀라노 생활을 회상하는
스가 아쓰코의 에세이집
스가 아쓰코의 『밀라노, 안개의 풍경』, 『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 『베네치아의 종소리』를 차례로 만나보면서 그녀가 그린 섬세한 기억의 풍경에 매료됐었다. 어쩌면 그 팔할은 소란한 가운데 고요를 이끄는 그녀만의 단아한 문체의 영향이기도 했으리라. 이번에 국내에 처음 소개된 『트리에스테의 언덕길』은 그녀의 밀라노 생활 중 남편 페피노와 그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엮고 있다. 그런 까닭에 가족을 향한 그녀의 시선이 머문 자리를 가만히 따르는 사이, 스가 아쓰코라는 한 존재에게 한층 친밀하게 가닿게 된다. 그녀 안의 따스함과 그 보다 더 깊숙이에 자리한 단단함을 마주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오랜 시간 이국땅에서 자신이 머물 자리를 차곡히 다지며 제 삶을 온전히 이끌어 나갈 수 있었던 원동력이기도 하지 않았을까. 더욱이 오랜 시간 골몰하며 다듬어온 문체와 글쓰기에 대한 열망이 그녀가 걸어온 삶의 방식 안에서 한층 빛을 발한 듯도 하다는 것이 나의 짧은 생각이다.
나는 왜 이리 오랫동안 사바에게 마음을 써왔던 것일까. 아직도 20년 전 6월의 어느 날 밤 숨을 거둔 남편에 대한 기억을 그와 함께 읽었던 이 시인에게 겹쳐보려는 것일까. 이탈리아에서 문화적으로도 지리적으로도 틀림없이 변경의 도시인 트리에스테까지 온 것이 사바를 좀 더 알고 싶은 일념에서라고 자신에게 다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는 자신을 어쩐지 불안해하고 있다. 사바를 이해하고 싶다면 왜 그가 편집한 시집 《칸초니에레Canzoniere》를 공들여 읽는 것에 전념하지 않는 걸까. 그의 시 세계를 명확히 파악하기에는 그 방법밖에 없지 않은가. 실제의 트리에스테를 보며 아마 거기에는 없을 시 안의 허구를 확인하려는 것은 무의미하지 않을까. 사바의 무엇을 이해하고 싶어 나는 트리에스테의 언덕길을 걸으려는 것일까. - p.16,17 「트리에스테의 언덕길」
트리에스테의 언덕길 - 스가 아쓰코 지음, 송태욱 옮김/뮤진트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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