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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20

아직 멀었다는 말 | 권여선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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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찌를 듯 무자비하면서도 따스한 햇빛처럼
황량한 폐허 속에서도 무언가를 찾아내는 손길처럼
끝인 듯 시작을 예고하는, 아직은 무엇도 끝나지 않았다는 말

 

 

 

나는 알고 있지만 내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이따금 생각한다. 어제는 알았던 것이 오늘은 알지 못하게 될 수 있고, 내일이면 알 수 있으려나 싶었던 것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불확실성, 그것이 이 세계에 발 딛고 있는 모든 존재들의 숙명, 삶이란 것의 속성이라 여기면서. 

단편 「모르는 영역」에서 부녀 관계인 명덕과 다영 사이에는 어떤 거리감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하여 상대방의 진심을 헤아리지 못한 채 오해하고 서운해하기도 한다. 허나 서로를 향한 애정,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기꺼이 알고자 하는 노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데, 그 점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한 수고가 어쩌면 상대방을 향한 관심, 사랑의 또 다른 이름 이기라도 한 것처럼. 이 같은 ‘모르는 영역’은 비단 명덕과 다영의 관계에서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대상을 우리 각자가 온전히 알 수 없는 한, 모르는 영역이 사라질 일은 결코 없을 테니까. 때로는 스스로에 대하여 자신조차도 알지 못하는, 자기도 몰랐던 영역 역시 심심찮게 마주하리라. 그렇기에 이 세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영역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고자 하는 의지, 그것뿐이 아닐는지. 설사 지금은 못 다 헤아리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단편 「모르는 영역」 외 이 책에 엮인 「손톱」, 「희박한 마음」, 「너머」, 「친구」, 「송추의 가을」, 「재」, 「전갱이의 맛」 역시 결국 자신 내지는 타인의 알지 못하는 부분에 대하여 기꺼이 알아가고자 하는 분투, 그로 인한 지리멸렬하지만 실로 삶다운 삶의 한 이야기로도 볼 수 있으리라.

 

 

 

소희는 강변을 달리는 통근버스 차창에 바짝 붙어앉아 아침햇살에 반짝이는 강물을 본다. 버스가 좋은데, 소희는 버스가 슬프다. 그러니까 슬픈 건 버스가 아니라 햇빛인데, 슬프면서 좋은 거, 그런 게 왜 있는지 소희는 알지 못한다.    - p.53 「손톱」

 

 

 

 

 

아직 멀었다는 말 - 10점
권여선 지음/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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