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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20

내가 죽은 뒤에 네가 해야 할 일들 | 수지 홉킨스∙할리 베이트먼 | F(에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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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엄마가 딸에게 남기는 삶의 처방전

 

 

 

딸은 유달리 잠이 오지 않는 어느 밤, 엄마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나날을 상상해 본다. 늘 곁에서 자신을 지탱해 주던 엄마라는 소중한 존재가 사라진다면, 과연 나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딸은 슬픔과 두려움 너머에서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훗날 엄마가 죽은 뒤에 자신이 참고할 수 있는 지침서를 마련해 달라는 부탁을 드려 보기로 한 것이다. 그것이 엄마가 적고 딸이 그려 완성한 그래픽 에세이 『내가 죽은 뒤에 네가 해야 할 일들』의 시발점이다. 시작은 엄마의 죽음을 알리는 전화에서부터다. 이후 세상을 떠난 지 하루, 이틀, 사흘…이 어느새 320일, 550일을 넘어 2만 일에 이른다. 그렇게 엄마가 떠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딸이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엄마는 적고 있다. 이를테면 죽음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고 지인들의 위로에 마음을 추스르는 일뿐 아니라 요리 레시피를 전수하기도 하고, 누군가를 만나 가족을 이루고 아이를 갖는 일에 이르기까지, 엄마이자 인생 선배로서 해주고 싶은 말들을 빼곡하게 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떠나고 이 세상에 남겨질 딸을 생각하며 적은 끝없는 사랑의 결과물이기도 할 것이다. 그 안에서 딸 역시 엄마의 무한한 사랑을 느끼는 동시에 비록 곁에 없더라도 엄마가 남긴 주옥같은 조언들을 자양분 삼아 꿋꿋하게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으리라.

문득 엄마 없는 내 삶을 그려 보자니,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막막함이 순간 엄습해 왔다. 그만큼 알게 모르게 엄마의 그늘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유리라. 하지만 자연의 섭리가 그러하듯, 이별의 순간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무작정 회피하고 두려워만 할 것이 아니라 마음의 준비랄까, 어떤 대비가 필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그런다고 그 상실의 충격과 공허감이 쉬이 상쇄될 것 같지는 않지만, 적어도 후회라는 뼈아픈 감정에서만은 일정 부분 피해 갈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그리고 그것을 위해 가장 선행되어야 할 방법이란 단연 지금 곁에 계신 이 순간을 보다 소중히, 알차게 보내는 일일 것이다. 분명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 여기에 이 책의 공동저자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할리 베이트먼이 엄마에게 제안했듯, 삶에 대한 구체적 조언이 담긴 인생 매뉴얼을 부탁드려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선 내가 일러스트레이터가 아닌 만큼 엄마 역시도 거창하게 생각할 것 없다고, 대단한 결과물을 바라기보다는 시도하는 것 자체, 그로 인한 과정만으로도 틀림없이 가치는 충분할 테니까. 더욱이 그 삶에 대한 처방전은 살아가는 내내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큰 힘이 돼 줄 것이라고.

만듦새 좋은 책이라고 생각했다. 덕분에 곁에 계신 부모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다시금 품을 수 있었으니, 그것만으로도.

 

 

 

D+76. 심호흡을 해 봐

비통에 빠져 있는 동안은 네 마음이 제멋대로 과거의 기억 속 얼굴이나 장소, 시간을 정처없이 배회하기도 하고, 갑자기 미래로 날아가 고아가 된 네 처량한 신세를 엿보기도 할 거야. 그러나 생각은 생각일 뿐이야. 생각은 현실이 아니란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생각은 늘 신뢰할 수 있는 것이 못 돼. 풀밭으로 나가 가장 푸르게 보이는 곳을 찾으렴. 그 자리에 무릎을 대고 앉아 가만히 들여다 봐. 작은 벌레들, 형형색색 줄무늬들, 헝클어진 잎사귀들……, 현실은 네 눈에 보이는 이런 것들이야. 지그시 눈을 감고 흙냄새를 깊숙이 들이마셔 봐. 운이 따라 준다면, 그동안 스프링클러 장치가 돌아가는 일은 없겠지.    - p.38, 39

 

 

 

 

 

내가 죽은 뒤에 네가 해야 할 일들 - 10점
수지 홉킨스 지음, 할리 베이트먼 그림, 전하림 옮김/F(에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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