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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여름 안에서 마주하는 불가해라는 축복
비로소, 기어코 나의 작은 세계를 벗어나는 이들의 눈부신 궤적
어느 누구에게도 입 밖의 말로는 도무지 가닿을 길 없는 마음들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대개는 욕망이라는 파도가 현실의 바위에 부딪쳐 새하얀 물보라를 일며 부서지는 찰나에 발현하는 그런 마음들, 그러니까 작가 백수린이 그려낸 화자들의 심리적 균열은 바로 거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나 일상의 평온을 위협받는 와중에도 그들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소란하지 않게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 순간들을 흘려보낸다. 그리고 훗날 찬찬히 되짚어 봄으로써 어떤 식으로든 끝내 마주하고야 마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거의가 지극히 내밀하고 사적인 데다가 자신도 어찌할 도리가 없는 불가항력의 것이기도 해서, 애당초 부유하다가 공중에서 흩어질 운명이었을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그녀의 소설 속 이들은 누구 한 사람, 그 작은 내면의 흔들림을 외면하지 않는다. 나아가 그런 자신을 이해해주고 감싸주기를 바라 마지않기에 기꺼이 곁에 있는 사람과 부대끼며 착실하게 일상이라는 울타리를 한층 견고하게 하는 편으로 마음을 가다듬곤 하는 존재들이었다. 그야말로 자신 앞에 직면한 일상과 삶을 향한 애정 없이는, 동시에 그것에 대한 기민하고 섬세한 마음 없이는 애초에 가능하지 않은 일이리라.
표제작 「여름의 빌라」를 비롯해 「시간의 궤적」, 「고요한 사건」, 「폭설」,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 「흑설탕 캔디」, 「아주 잠깐 동안에」, 「아카시아 숲, 첫 입맞춤」이 수록돼 있다.
긴 세월의 폭력 탓에 무너져내린 사원의 잔해 위로 거대한 뿌리를 내린 채 수백 년 동안 자라고 있다는 나무. 그 나무를 보면서 나는 결국 세계를 지속하게 하는 것은 폭력과 증오가 아니라 삶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단다. - p.68 「여름의 빌라」
여름의 빌라 - 백수린 지음/문학동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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