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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23

내 이름은 루시 바턴 |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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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모든 생(生)은 감동이다!

 

 

 

소설가가 된 ‘나’(루시 바턴)는 자신이 걸어온 삶을 돌이켜본다. 그 시작은 1980년대 중반, 9주 가까이 병원에 입원해 있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뉴욕에서 가정을 꾸린 때였고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남편을 대신해 상당 기간 연락을 하고 있지 않던 엄마의 병간호를 받아야 했던 상황이었다. 자연히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 안에서 그 시절 가족들과 앰개시라는 작은 시골 마을 그리고 이웃들… 소소한 행복이 있기도 했지만 지독히 벗어나고 싶었던 지난날의 기억이 알알이 살아난다. “지금은 내 인생도 완전히 달라졌기에,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며 (…)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고. 어쩌면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을 거라고” 여기면서도 “햇살이 내리쬐는 보도를 걷거나 바람에 휘는 나무 우듬지를 볼 때, 또는 이스트 강 위로 나지막이 걸린 11월의 하늘을 바라볼 때, 내 마음이 갑자기 어둠에 대한 앎으로 가득차는 순간들이 — 예기치 않게 — 찾아오기도”(p.21) 함을 떠올린다. 그것은 곧, 그녀 스스로가 예전과는 전혀 달라진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고 여기면서도 내면에서는 차마 떨쳐버리지 못한 과거의 기억을 담아두고 있었음에 대한 자각이기도 했으리라. 그렇게 그녀는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 안에서 지난날을, 그 시기의 자신을 마주한다. 그리고 서서히, 하지만 명확하게 깨닫게 된다.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저만치 미뤄 두었던 시간들 속에서 무엇이 지금의 그녀를 존재하게 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것은 다름에 아닌 켜켜이 쌓아온 시간들, 즐겁고 행복하기도 했지만 슬프고 외롭고 고통스러웠던 순간들을 아우르는 모든 경험, 그때의 기억 속에서 오늘의 자신이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을 마음 깊숙이 에서부터 수긍하게 되는 것이다. 비록 과거의 모든 것을 포용할 수는 없더라도 그런 기억만은 끌어안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때때로 그녀의 탄성을 자아내던 앎의 모든 순간들 속에서 그렇게 그녀는 한층 선명해지는 자기 자신을 마주했으리라.

나는 루시 바턴의 이야기 속에서 평행선을 걷듯, 내가 걸어온 삶을 줄곧 의식하고 있었다. 자기 자신을 ‘나’로서 존재하게 하는 것, 그것은 어쩌면 끈질기게 붙잡고 있던 혹은 단단히 붙들려 있던 기억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물론 기억은 세월 속에서 지워지고 재구성되기도 하는 등 불완전하다. 그럼에도 그 모든 기억은 결국 자기 자신과 타인, 나아가 이 세계에 가닿으려는 의지의 한 형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면 지나칠까. 온전히 가닿을 수 없지만, 그럼에도 그와 같은 애씀 안에서 한층 선명해지는 자기 자신을 만나고 타인과 관계하며, 이 세계를 살아갈 수 있는 것이라고 나아가 그 안에서 비로소 생의 눈부심을 찬미할 수 있는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건 내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이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몰라의 이야기이자 내 대학 룸메이트의 이야기이고, 어쩌면 프리티 나이슬리 걸즈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엄마. 엄마! 하지만 이 이야기는 내 것이다. 이 이야기만큼은. 그리고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이다.    - p.216

 

 

 

 

 

내 이름은 루시 바턴 - 10점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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