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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23

수레바퀴 아래서 | 헤르만 헤세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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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고루하고 위선적인 권위에 희생된 순수한 소년의 비극
개인의 창의성과 자유로운 의지를 짓밟는 제도와 교육에 대한 비판

 

 

 

소년 한스 기벤라트는 총명했고, 그런 까닭에 아버지와 학교 선생님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관심 속에 재능 있는 아이라면 의례히 나아가야 할 단 하나의 길을 향해 내디뎠다. 그것은 곧 신학교에 들어가 목사가 되는 일이었는데, 입학의 기쁨과 밝은 장래에 대한 설렘도 잠시, 신학교 생활은 주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며 살아온 지난날의 삶을 전복시킨다. 결국 신경쇠약 증세로 학교를 떠나 집으로 돌아오게 되고, 더는 주위에서 격려하던 이들이 존재하지 않는 냉엄한 현실에 부딪히게 된다. 

그 파국의 여정을 좇으며 수레바퀴 아래서 있던 젊은 영혼을 다시금 떠올려본다. 물론 어느 누구도 한스가 잘못되기를 바란 적 없고, 외려 자신들의 마을을 빛내 줄 희망으로 여기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의도와는 별개로 과도한 관심과 참견, 진로에 대한 강요는 결과적으로 한 소년을 망가뜨리고 말았다. 외부 세계와 내면 사이의 갈등을 부추기며 걷잡을 수 없는 혼란과 충돌의 상황에 내몰리게 만든 것이다. 스스로 올바른 선택과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줄 수 있는 진정한 어른이 단 한 사람이라도 곁에 있었다면 이토록 참담한 결과는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더욱이 극에 치달은 상황에서도 “이제는 영원히 쉬고, 잠들고, 또 부끄러워해야 할 것만 같았다”(p.258)는 대목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파멸의 순간에도 제 모자람만을 자책하며 스러져간 한 소년의 비극을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각자의 마음속에 꾹꾹 눌러 담았기를 희망한다.

 

 

 

줄기를 잘라 낸 나무는 뿌리 근처에서 다시 새로운 싹이 움터 나온다. 이처럼 왕성한 시기에 병들어 상처 입은 영혼 또한 꿈으로 가득 찬 봄날 같은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기도 한다. 마치 거기서 새로운 희망을 찾아내어 끊어진 생명의 끈을 다시금 이을 수 있기라도 한 듯이. 뿌리에서 움튼 새싹은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나지만, 그것은 단지 겉으로 보여지는 생명에 불과할 뿐, 결코 다시 나무가 되지는 않는다. 한스 기벤라트도 그랬다.    - p.186, 187

 

 

 

 

 

수레바퀴 아래서 - 10점
헤르만 헤세 지음, 김이섭 옮김/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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