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634) 썸네일형 리스트형 A가 X에게 | 존 버거 | 열화당 편지로 씌어진 소설 약제사로 일하고 있는 아이다는 감옥에 갇혀있는 연인 사비에르를 떠올리며 펜을 든다. 달콤한 애칭으로 시작되는 편지에는 약국에서 보낸 자신의 일상과 그 안에서 마주한 사람들과의 에피소드를 전하며 매 순간 당신을 그리워하고 있음을 표현한다. 한편 감옥에서 편지를 읽었을 사비에르는 그 뒷장에 메모를 남겨 놓는다. 그것은 대개 위협적인 존재 혹은 당면한 문제들을 향한 위기의식과 저항 의지에 대한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물리적인 거리 감내하며 자기만의 방식으로 묵묵히 현재를 살아간다. 그리고 앞날에 대하여 생각한다. 그것은 비록 고통을 수반한 일이지만, 오직 자기 자신으로 남기 위한 투쟁을 멈추지 않기로 함으로써 주어질 미래일 것이다. 그렇게 절박한 마음으로 한발 한발 내딛.. 나무 | 고다 아야 | 책사람집 북쪽 홋카이도에서 저 남쪽 야쿠시마까지 13년 6개월에 걸쳐 기록한 나무 이야기 노(老) 작가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더러는 타인의 도움에 의지하기도 하며 나무 앞에 선다. 무얼 보고 싶었던 걸까, 나는 시종 그런 호기심으로 열다섯 편의 나무 이야기를 따랐다. 작가가 일본 전역을 돌아다니며 마주한 나무들은 저마다 처해 있는 환경 안에서 묵묵히 살아가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마음 깊이 감탄을 자아낼 만큼 위용 있는 경이의 현장이기도 했지만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투의 현장이었고 그럼에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제 살 길을 도모하는 애처로움의 현장이기도 했다. 그 안에서 작가는 나무의 시선으로 그들이 감내했을 상처를 어루만지고 그 이력을 헤아리는데 제 마음을 다한다. 나아가 그때에 자신이 느꼈던 솔직한 ..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 | 무레 요코 | 라곰 인생에서 가장 힘든 선택을 앞둔 사람들 과연 물건을 버리고, 삶을 가볍게 정리할 수 있을까?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 수록된 다섯 편에는 저마다의 이유로 물건들을 정리해야만 하는 이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이런저런 추억이 깃든 물건 앞에서 한없이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인다. 때로는 타인의 물건을 대신 처리해야 하는 까닭에 곤혹스러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그 일을 해냄으로써 비울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 물건을 정리하는 일에 국한되지 않은, — 함께 얽혀 있던 해묵은 감정들을 흘려보내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재정립함으로써 삶을 정화하는 일이기도 하기에 한층 의미가 있어 보인다. 책을 한 번 정리하고 나니 앞으로도 책을 얼마든 줄일 수 있겠다는 묘한 자신감이 생겼다. 물론 아끼는 책과 이별하.. 인생의 베일 | 서머싯 몸 | 민음사 진정한 사랑, 용서와 화해, 삶의 의미를 되짚는 감동적인 대서사시 “알겠지만, 평화는 일이나 쾌락, 이 세상이나 수녀원이 아닌 자신의 영혼 속에서만 찾을 수 있답니다.” - p.192 원장 수녀가 했던 말을 떠올려본다. 수녀원에서 봉사하기를 바라는 키티의 간절함 뒤에 숨은 불안하고 혼란한 심리를 간파한 그녀였기에 건넬 수 있던 조언이었으리라. 키티는 그렇게 “봉사하는 일에서 영혼을 재충전하는 길을 발견했”(p.192)고, 지난날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후회하는 동시에 외도 상대였던 찰스 타운센드를 향한 자신의 사랑이 얼마나 무가치한 것이었는지를 깨우쳤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외도한 아내를 사랑했던 스스로를 참을 수 없었던 월터는 제 영혼 속에서 평화를 찾지 못한 채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그렇게.. 이바라기 노리코 시집 | 이바라기 노리코 | 스타북스 일본 교과서에 윤동주 시 4편을 수록한 시인 “내가 가장 예뻤을 때”로 경쾌하게 시작하는 시는 이내 그녀가 사는 암담한 세상을 보여 준다. 비로소 전쟁은 끝났지만 조국은 패전국이 되어 남은 것이라고는 파괴된 거리와 넘쳐나는 죽은 이들뿐인 곳이다. 거기서 “비굴한 거리를 쏘다”니는 것 말고, 소녀는 무얼 할 수 있었을까.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아주 불행했다”는 담담한 고백에 가슴이 아릿해 오는 연유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될수록 오래 살기로” 했다는 그녀의 결심에 깊은 안도감을 느낀다. 그것은 말하자면 희망이 아닐는지 하는 기대인 것이다. 이처럼 그녀의 시에 담긴 슬픔과 괴로움, 아픔은 그 자리에 고여 있지 않는다. 현실을 바로 보고, 그럼에도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다짐으로써 삶을 낙관한다. 그.. 영원한 것을 | 나가이 다카시 | 바오로딸 한줌의 잿더미에서 영원한 것을 찾은 나가이 다카시의 자전적 소설 나가사키 의과대학에 재학 중인 류우키치는 가톨릭 신자 마을인 우라카미의 소장수 집에서 하숙하게 되면서 ‘삶 자체가 기도’(p.29)인 주민들의 모습에 감화된다. 하느님과의 맺음을 통해 비로소 영원성을 얻을 수 있다는 깨달음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세례를 받고, 남은 일생을 하느님을 사랑하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해야 함을 몸소 실천하는 삶을 살아간다. 이는 곧 저자 나가이 다카시가 걸어온 삶의 모습이기도 했으리라. 그 안에서 한 사람의 신앙인으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태도, 방향성 등 삶의 모범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어 탄복하게 된다. 특히 자신의 소명을 다하고자 제 건강을 잃으면서도 방사선 진료와 연구를 멈추지 않았던 ..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 | 진은영 | 마음산책 진은영 시인의 포기하지 않는 읽기 문학에 깃든 치유의 힘을 믿는다. 도저히 이 세계에 맞지 않아 갈 곳 없는 존재가 된 것 같은 막막한 순간에도 외로운 영혼을 감싸 줄 한 권의 책, 그 안의 한 줄 문장의 가치를 아는 연유다. 그러니 독서를 “살기 위해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p.8) 했던 시인의 말이 마음 깊숙이에 와닿을 수밖에. 진은영 시인의 산문집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에 엮인 글들은 꼭 그와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향한 다독임으로 보아도 무방하리라. 이를테면 문학의 힘을 빌려 함께 이 삶을 애써보자, 하는 응원의 메시지 같은. 그렇게 나는 오늘도 영혼의 문장을 캐는 광부의 마음으로 독서를 한다. 릴케의 시구처럼 우리는 책에서 자신의 그림자로 흠뻑 젖은 것들을읽는다. - p.10.. 대온실 수리 보고서 | 김금희 | 창비 부서진 삶을 수리하고 미완으로 남은 인간의 소망을 재건하는 눈부신 발걸음 저마다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 그것은 절대적 그것과 구별되는, 오로지 그 안에 속한 존재의 온전한 몫이라는 걸 깨닫는다. 그러므로 자신만의 속도에 맞춰 가닿을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제 삶을 살아가는 것이 각자에게 부여된 운명이고 과제인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창경궁 대온실 수리 보고서 기록 담당이었던 영두는 지난날의 상처받은 기억을 마음속에 묻어 두었지만, 대온실 복원의 과정 안에서 — 나아가 그 공간과 연을 맺은 적 있는 모두의 삶에서 — 비로소 마주할 용기를 얻게 되었다. 그것은 잘라내지 못하고 통째로 버려야만 했던 아픔이고 불행이었지만, 이제는 그것을 보듬고 나아갈 수 있는 그녀만의 때가 찾아온 것이리라. 산.. 이전 1 2 3 4 5 ··· 80 다음 목록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