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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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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인사 | 김영하 | 복복서가 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의 이분법을 허무는 김영하의 신비로운 지적 모험 “인간은 모든 것을 도구로만 여기고 그것의 활용을 고민한다. 나의 ‘용도’는 정확히 무엇일까?”(p.213) 골몰했던 철이의 고민은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던져진 경계의 화두가 아닌가 한다. 과학기술의 발전, 더욱이 인공지능이 일상 깊숙이 침투하면서 발생하게 될 크고 작은 문제들에 대하여 더 이상 대비하고 대처하기를 미룰 수가 없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종(種) 이외의 다른 존재의 출현 - 그 안에서도 배제된 이들을 향한 우세한 이들의 무자비한 파괴와 폭력 - 을 한낱 상상 속의 장면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는 위기감 역시 느끼게 한다. 이렇게 된 이상, 선이가 말했던 ‘그냥 모여 있으면 힘이 되기도’(p.284) 한 우주정신을 발휘하는 ..
여행의 이유 | 김영하 | 문학동네 어둠이 빛의 부재라면, 여행은 일상의 부재다 여행지에서 겪은 에피소드에서 나아가, 여행 전반을 아우르는 사유를 시도하는 데에 한결 매력적인 산문집이다. 이야기의 출발은 작가 개인의 사적인 경험에서 비롯하지만, 삶을 향해 뻗어가는 흐름 안에서 개인을 넘어서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치환되는 까닭이다. 동시에 여행지에서 스친 단상들이 쌓이고 쌓여 한 편의 산문으로 완성되기까지 공들인 노고의 글쓰기가 제대로 빛을 발한 이유도 더해졌을 것이다. 그 이야기들 안에서 새로운 시선으로 ‘여행’에 관하여 생각해 볼 여지를 선사한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이번 생은 떠돌면서 살 운명이라’(p.207) 말하는 작가가 전하는 여행 이야기라서 한층 와닿았는지도 모르겠다.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오직 두 사람 | 김영하 | 문학동네 우리는 모두 잃으면서 살아간다. 여기,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그 이후'의 삶이 있다.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아이가 감쪽같이 사라진다. 이제 막 세 돌이 지난 아이는 누군가에 의해 유괴된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 어떤 흔적도 찾지 못한 채,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이를 찾는 전단지 뭉치를 들고 헤매는 것뿐이다. 그 사이 아내의 정신은 흐려졌고, 가세는 기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만 찾을 수 있다면, 이 고통의 시간들은 말끔히 씻길 것이라 의심치 않는다. …십일 년 후, 아이를 찾았다. 그러나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더 잔혹하고 거대한 비극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2014년 4월의 그 참혹했던 사건은 소설가 김영하의 삶과 소설에 적잖은 변화를 가져왔다. 작가는 그 기점에 놓인 작품이 ..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김영하 | 문학동네 왜 멀리 떠나가도 변하는 게 없을까, 인생이란 프랑스의 여성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이 마약 복용 혐의로 기소되었을 때 내뱉은 말로도 이슈가 됐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타이틀로 한 김영하 작가의 소설이다. 그녀의 당당했던 발언만큼이나, 소설 역시 참신하다 못해 상당히 파격적이다. "아무도 다른 누구에게 구원일 수는 없어요." - p.133 오직 자신만이 구원일 수 있다는 미미의 결론과 그 선택이 윤리적인 문제를 떠나 자못 놀랍다. 그러한 권리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그녀의 결단력이 가상하달까. 소설 속 '나'는 미미와 유디트를 보내며,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글을 완성한다. 그리고 그 글을 읽을 이들에게 말한다. 이 글을 보는 사람들 모두 인생에 한 번쯤은 유디트와 미미처럼 마로니에공원이나 한적..
살인자의 기억법 | 김영하 | 문학동네 숨 가쁘게 내달린다 그리고 문득 눈앞을 가리는 아득한 실연!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고 명확한 문체가 매력적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연스레 속도감 있는 전개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속도감에 대한 배반을 극대화하는 데에, 모자람 없는 절대적 장치였단 생각이 든다. "무서운 건 악이 아니오. 시간이지. 아무도 그걸 이길 수가 없거든." - p.145 70세 노인 김병수는 전직 수의사이자, 연쇄살인범이다. 그리고 그는 은희를 구하고자 마지막 살인을 시도하려 하고, 나 또한 차츰 그렇게 믿게 되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김병수도 나도 혼란에 빠졌다. 노트를 들추거나 녹음된 내용을 들어보면 전혀 기억나지 않는 일이 기록되어 있곤 한다. 기억을 잃어가고 있으니 당연한 일. 기억에 없는 나 자신의 행위,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