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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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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 | 박완서 | 창비 박완서 산문집 스물세 편의 글을 모두 읽고서 책 정보를 살펴보니 초판 시기는 2002년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으로부터 이십 년 하고도 일 년 전이 되고, 여기 엮인 산문들은 그보다 훨씬 전인 1995년부터 쓰인 것을 엮었으니 삼십 년을 향해 가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글을 읽는 나로서는 강산도 세 번 바뀔 그 물리적 시간의 흐름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을 만큼 문장 안에서 생생하게 존재하고 있는 박완서 작가를 마주했다. 그것은 곧 세상을 바라보는 예리한 시선, 그 끝에는 — 단박에 우리의 눈을 홀리는 빛나고 화려한 것이 아니라, — 저 밑의 하찮고 소박해서 쉬이 업신여겨지거나 지나칠 법한 것에 진득하게 머무르며 그 작은 것들에 목소리를 보태는 따스함이지 않았을까. 더욱이 삶의 희로애락, 그 모든 순간을 통과..
나의 아름다운 이웃 | 박완서 | 작가정신 우리 시대의 영원한 이웃, 박완서를 다시 만나는 시간 삶의 진리가 평범한 사람들을 통해 드러난다. 『나의 아름다운 이웃』에 담긴 48편의 짧은 소설이 그렇다. 1970년대 한창 분주하게 산업화를 추진해가던 시기와 맞물린 급격한 사회 변화 안에서 대개의 사람들은 넘실대는 시류에 편승해 가장 현대적인 것에 안착하고자 제 나름의 애를 썼다. 그 안간힘 속에서 계속되는 나날은 반세기를 훌쩍 흐른 오늘에 바라보아도 그리 이질감을 느낄 수 없다. 그것은 어느 시대 건 뒤쳐지지 않고 첨단의 것을 온전하게 누리길 바라는 이들의 욕구와 열망이 전연 다르지 않고, 무엇보다 사랑과 결혼,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나’란 사람을 기준으로 내가 맺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의 관계라는 형태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는 까닭이기도 할..
엄마의 말뚝 | 박완서 | 세계사 박완서 소설전집 결정판 11 「엄마의 말뚝」 연작을 비롯해 「유실」, 「꿈꾸는 인큐베이터」, 「그 가을의 사흘 동안」, 「꿈을 찍는 사진사」, 「창밖은 봄」, 「우리들의 부자」가 한 권에 담겨 그 양이 600 페이지에 이른다. 「엄마의 말뚝」은 엄마에 대한 감정을 솔직하게, 하지만 놀라울 만큼 담담하게 적고 있다. 물론 박완서 작가 특유의 맛깔스러운 문장은 여전하다. 그래서일까, 끊어 읽을 타이밍을 찾지 못한 채 한자리에서 흥미롭게 읽었다. 이밖에 실려 있는 단편들은 삶을 바라보는, 그리고 사회를 바라보는 작가의 날카로우면서도 세밀한 시선이 인상적이었다. 그야말로 지금 읽어도 결코 낡아 보이지 않는 글. 엄마의 말뚝 - 박완서 지음/세계사
노란집 | 박완서 | 열림원 이제야 보이기 시작하는 것들 아치울 노란집에서 다시 들려주는 이야기 그간 박완서 작가의 글들을 통해, 서울 아파트에서 벗어나 경기도 외곽의 주택으로 자리를 옮겨 흙과 나무, 들꽃과 함께하는 자연적 삶을 살며 흡족해하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에 들어왔다. 그때마다 아파트 밖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나는 시원한 바람이 막힘없이 오가고, 계절의 순환에 따라 피고 지는 온갖 생명들과 밀착할 수 있는 전원생활을 이따금 머릿속으로 상상하곤 했다. 이번에 새로 나온 『노란집』은 작가가 사랑해 마지않던 아치울 노란집에서 쓴 2000년 대 초반의 글들을 묶은 책이라고 한다. 매번 박완서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느끼는 거지만, 문장 하나 하나 읽을 때마다 느껴지는 삶에 대한 애착이 내 마음속까지도 깊이 와닿는다. 그리고 너무나..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 박완서 | 현대문학 등단 40년, 세대를 뛰어넘는 '시대의 이야기꾼' 박완서 소리 없이 스쳐 간 건 시간이었다. 시간이 나를 치유해줬다. 그렇다면 시간이야말로 신이 아니었을까. (…) 나를 스쳐 간 시간 속에 치유의 효능도 있었던 것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신이 나를 솎아낼 때까지 이승에서 사랑받고 싶고, 필요한 사람이고 싶고, 좋은 글도 쓰고 싶으니 계속해서 정신의 탄력만은 유지하고 싶다. 박완서 작가의 글을 읽다 보면, 동일한 소재를 두고 이야기를 반복하는 경우가 더러 있어 참신한 맛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지겹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것은 글마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의 입담 아니 글담??이 좋아서 일까. 여하튼 읽어도 읽어도 묘한 매력이 있다, 적어도 내겐. 『못 가본..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 박완서 | 세계사 박완서 소설전집 결정판 19∙20 알려졌다시피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작가의 경험에 토대를 둔 자전적 소설이다. 그렇기에 더욱 흥미롭게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는데, 이 두 권을 다 읽은 지금 이 책에 담긴 내용이 너무 아파서 평소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감상을 끄적이는 일이 주저되는 부분이 있다. 그 시기를 겪지 않은 세대이기에 당시의 시대 상황과 감내해야만 했을 고통의 크기가 너무나도 막연한 탓도 있고, 감히 이해할 것 같다는 말로 가벼이 넘기기도 뭣한 까닭이다. 그러나 벌레를 벗어나기 위해 그 시간을 증언하겠다는 작가의 말을 곱씹으며, 작가가 겪어냈던 질곡의 삶과 그런 아픈 시기를 이겨내고자 했던 처절한 몸부림만은 이 두 권 책을 통해 분명하게 기억하려고..
그 남자네 집 | 박완서 | 세계사 사랑이 사치가 되던 그 시절, 구슬 같던 첫사랑 이야기 『친절한 복희씨』라는 소설집을 보면, 「그 남자네 집」이라는 제목의 단편이 있다. 이미 박완서 작가의 장편 『그 남자네 집』을 읽었던 터라 읽으면서도 의아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알고 보니 단편 「그 남자네 집」은 2002년 여름호『문학과 사회』에서 처음 발표했던 단편이고, 2년 뒤에 이를 기반으로 살을 붙인 동명의 장편소설을 발표했다고 한다. 그리고 2007년 출간한 소설집 『친절한 복희씨』 에는 단편 「그 남자네 집」이 수록된 것이고. 『그 남자네 집』은 주인공이 사는 동네로 그 남자네가 이사 오면서 시작된 두 사람의 인연에 대한 이야기다. 말하자면, 주인공과 그 남자는 서로의 첫사랑인 셈이다. 그러나 이 소설을 단순히 첫사랑을 그린 소설로 치부하..
세상에 예쁜 것 | 박완서 | 마음산책 작가 박완서의 성찰과 지혜, 미출간 산문들! 급격하게 쌀쌀해지기 시작한 11월을 『세상에 예쁜 것』과 함께하면서 마음이 따뜻해질 수 있었기에 참 고맙다. 사실 박완서 작가의 소설들을 아예 안 읽었다고도 할 수 없지만, 관심 있게 읽었다고도 할 수 없는지라 여백이 많은 상태에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사실 이 책도 우연하게 서점에서 발견하고는 이걸 인연으로 삼고 마지막으로 남기신 『세상에 예쁜 것』에 실린 글들을 시작으로 거꾸로 시간 여행을 하듯 읽어 보자는 심산이었다. 역시나 책을 덮으며 이제 더는 박완서 작가의 새로운 글을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워질 만큼 지혜와 통찰이 있는 한 권이었다. 아직 읽지 못한 많은 책들이 기다려진다. 40세에 첫 소설을 쓰고 나서 다시 4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