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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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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 | 박완서 | 창비 박완서 산문집 스물세 편의 글을 모두 읽고서 책 정보를 살펴보니 초판 시기는 2002년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으로부터 이십 년 하고도 일 년 전이 되고, 여기 엮인 산문들은 그보다 훨씬 전인 1995년부터 쓰인 것을 엮었으니 삼십 년을 향해 가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글을 읽는 나로서는 강산도 세 번 바뀔 그 물리적 시간의 흐름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을 만큼 문장 안에서 생생하게 존재하고 있는 박완서 작가를 마주했다. 그것은 곧 세상을 바라보는 예리한 시선, 그 끝에는 — 단박에 우리의 눈을 홀리는 빛나고 화려한 것이 아니라, — 저 밑의 하찮고 소박해서 쉬이 업신여겨지거나 지나칠 법한 것에 진득하게 머무르며 그 작은 것들에 목소리를 보태는 따스함이지 않았을까. 더욱이 삶의 희로애락, 그 모든 순간을 통과..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 박완서 | 세계사 한국문학의 가장 크고 따뜻한 이름, 박완서 그가 남긴 산문 660여 편 중 가장 글맛 나는 대표작 35 작가 박완서를 떠올리면 단연 ‘한국문학의 어머니’라는 칭호부터 떠오른다. 여기에 더해, 내 마음속에서는 입담 좋은 할머니로 우뚝 서 있다. 단순히 물리적 나이차가 그즈음인 영향도 있겠지만, 그녀의 이야기에 매몰되어 있을 적이면 늘 할머니의 너른 품, 때때로의 인간적인 모습에 친근함을 느끼곤 했던 까닭이다. 더욱이 아주 오래전부터 나는, 내가 살아보지 못한 격동의 시대, 그 생생한 이야기를 나의 할머니, 할아버지에게서 전해 듣고 싶은 작은 바람이 있었지만 허락지 못했다. 그러나 그와 같은 허기진 부분을 문학이라는 울창한 숲이, 그 안에서도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 박완서 | 현대문학 등단 40년, 세대를 뛰어넘는 '시대의 이야기꾼' 박완서 소리 없이 스쳐 간 건 시간이었다. 시간이 나를 치유해줬다. 그렇다면 시간이야말로 신이 아니었을까. (…) 나를 스쳐 간 시간 속에 치유의 효능도 있었던 것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신이 나를 솎아낼 때까지 이승에서 사랑받고 싶고, 필요한 사람이고 싶고, 좋은 글도 쓰고 싶으니 계속해서 정신의 탄력만은 유지하고 싶다. 박완서 작가의 글을 읽다 보면, 동일한 소재를 두고 이야기를 반복하는 경우가 더러 있어 참신한 맛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지겹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것은 글마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의 입담 아니 글담??이 좋아서 일까. 여하튼 읽어도 읽어도 묘한 매력이 있다, 적어도 내겐. 『못 가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