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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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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안부 | 백수린 | 문학동네 슬픔의 터널을 지나 쏟아지는 환한 빛처럼 긴 시차를 두고 도착한 애틋한 화해의 인사 언니를 사고로 잃고 아빠와 헤어져 엄마, 동생과 함께 독일로 떠났던 해미를 생각한다. 시한부인 선자 이모의 첫사랑을 찾고자 한수, 레나와 머리를 맞대어 골몰했던 나날, 이후 독일을 떠나고도 한수의 실낱 같은 희망을 위하여 거짓 편지를 써야 했던 해미의 심정을 헤아려 본다. 언니의 죽음 앞에서 그 무엇도 할 수 없었던 무력한 소녀는 이번에 만이라도 어찌할 수 없는 죽음 앞에 놓인 선자 이모와 그녀의 아들 한수를 위하여 그 무엇이라도 해야만 했던 것이리라. 그로 인한 죄책감을 떠안을 줄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던 해미의 간절한 마음에 나는 얼마나 가닿았을까. 마주한 상실의 아픔은 때때로 한 인간의 삶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 백수린 | 창비 깊은 사색이 담긴 아름다운 문장, 내 안에 사랑과 행복을 일깨워준 모든 존재에 대한 기록 제 안의 행복을 샘솟게 하는 것들을 우리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수년 째 언덕 위의 집에 사는 작가가 털어놓은 그것들에 대한 이야기 안에서 나는 이 겨울의 추위도 잊은 채 도리어 포근함을 느낀다. 어쩌면 안도했다는 말이 더 적확하겠다. 그것은 우리가 쉬이 생각하고 단정 짓는 행복의 잣대에서 한 걸음 물러 선, 이 시대에 자꾸만 뒤로 밀리고 마는 어떤 마음을 어루만지고 있는 까닭이라고 나는 이해했다. 아마도 나는 지친 가운데서도 그런 확신할 길 없이 멀어져 가는 그 마음을, 그런 마음을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을 애타게 찾고 있었던 것도 같다. 정말이지,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p.105)을 품어 본다. ..
여름의 빌라 | 백수린 | 문학동네 인생의 여름 안에서 마주하는 불가해라는 축복 비로소, 기어코 나의 작은 세계를 벗어나는 이들의 눈부신 궤적 어느 누구에게도 입 밖의 말로는 도무지 가닿을 길 없는 마음들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대개는 욕망이라는 파도가 현실의 바위에 부딪쳐 새하얀 물보라를 일며 부서지는 찰나에 발현하는 그런 마음들, 그러니까 작가 백수린이 그려낸 화자들의 심리적 균열은 바로 거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나 일상의 평온을 위협받는 와중에도 그들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소란하지 않게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 순간들을 흘려보낸다. 그리고 훗날 찬찬히 되짚어 봄으로써 어떤 식으로든 끝내 마주하고야 마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거의가 지극히 내밀하고 사적인 데다가 자신도 어찌할 도리가 없는 불가항력의 것이기도 해서, 애당초 부유하다..
오늘 밤은 사라지지 말아요 | 백수린 | 마음산책 "그 시기만 지나면 그런 불안한 마음은 괜찮아지나요?" 평온했던 일상을 한 순간 깨는 일을 이따금 마주한다. 누가 봐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만한 중대하고도 심각한 일인 경우도 더러는 있지만, 오직 자신만이 감지한 몹시 섬세하고도 여린 감정의 소용돌이일 때가 대개다. 그야말로 한순간에 불현듯 밀려온 감정들에 대한 이야기인 셈이다. 물론 엄밀하게 말하자면, 마음 어딘가에 쌓아 두어 잠재돼 있던 것이 어떤 일이나 상황을 계기로 불쑥 수면 위로 떠올랐다고 하는 편이 더 적확하기는 하겠다. 그리고 이 같은 감정의 여파는 스치듯 이내 사라지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한동안의 자신을 사로잡을 만큼 강렬하고도 집요하게 따라 붙기도 한다. 동시에 스스로 조차 그런 감정에 대하여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하고도 미묘..
2017 제8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 임현 외 | 문학동네 # 01. 「고두(叩頭)」, 임현 인간에게 필연적이기 마련인 자기모순, 그 전형을 한 윤리 교사의 자기 옹호에서 읽는다. 오늘도 누군가는 용서를 구하기 위해 사과하고, 다른 누군가는 그 사과를 받아들이고 용서하기로 한다. 오가는 사과와 용서 속에 얼마큼의 진실과 진심이 담겨 있을까. 혹여 용서를 받아내고, 사과를 받아내는 것에 몰두하고 있는 건 아닐까. '도덕이고 정의이고 올바른 세계'(p.26)라 믿어왔고, 또 그래야만 할 우리의 민낯을 고스란히 내보이는 글이다. 무슨 잘못을 진짜 하긴 했는지, 그걸로 미안한 감정을 가졌는지의 여부는 아무 상관 없단다. 핵심은 그런 말을 할 줄 아느냐, 모르느냐뿐이거든. 나는 그걸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가식적이라고? 진정성이라든가 진심 같은 말을 나는 전혀 신뢰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