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별별책/2023

눈부신 안부 | 백수린 | 문학동네

반응형

 

[이미지 출처 - 알라딘]

 

 

 

슬픔의 터널을 지나 쏟아지는 환한 빛처럼
긴 시차를 두고 도착한 애틋한 화해의 인사

 

 


언니를 사고로 잃고 아빠와 헤어져 엄마, 동생과 함께 독일로 떠났던 해미를 생각한다. 시한부인 선자 이모의 첫사랑을 찾고자 한수, 레나와 머리를 맞대어 골몰했던 나날, 이후 독일을 떠나고도 한수의 실낱 같은 희망을 위하여 거짓 편지를 써야 했던 해미의 심정을 헤아려 본다. 언니의 죽음 앞에서 그 무엇도 할 수 없었던 무력한 소녀는 이번에 만이라도 어찌할 수 없는 죽음 앞에 놓인 선자 이모와 그녀의 아들 한수를 위하여 그 무엇이라도 해야만 했던 것이리라. 그로 인한 죄책감을 떠안을 줄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던 해미의 간절한 마음에 나는 얼마나 가닿았을까.

마주한 상실의 아픔은 때때로 한 인간의 삶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럼에도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것은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제 자리를 지키고자 부단히 애쓰는 자기 자신, 그 내면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부족하다. 곁에서 알게 모르게 힘을 북돋아 주는 누군가가 그 원천이기도 함을 의심하지 않는 까닭이다. 해미 역시도 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 후 “살아 있는 게 내가 아니라 언니였다면 언니는 틀림없이 엄마 아빠를 기쁘게 해주었을 텐데.”(p.30) 자책하며 괴로운 시간을 견뎌야 했는데, 낯선 독일에서 만난 한수와 레나라는 좋은 친구들 덕분에 다시금 웃음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다시금 한국으로 돌아가게 된 상황은 해미에게 또다시 상실감을 안겼고, 후일 해결하지 못한 것을 마음에 두고 있었던 선자 이모의 첫사랑을 찾기 위한 뒤늦은 시도의 과정 안에서 서서히 자신 역시도 과거의 그림자에서 차츰 벗어나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것 역시 그녀를 향해 마음 쓰는 사람들 — 유년의 상처 탓에 제 마음을 온전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헤어졌던 우재와 재회하게 되면서, 잠시 한국으로 돌아와 함께 지내며 “네가 찬란히 살았으면 좋겠”(p.227)다는 이모의 응원 — 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다정한 마음이 몇 번이고 우리를 구원할”(p.304) 것이라 맺음 한 선자 이모의 편지가 특히 그랬다. 물론 이 모든 것에 앞서 슬픔과 고통으로 얼룩진 지난날의 자신을 둘러싼 것들을 비로소 온전하게 바라보고 품을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으로 줄곧 나아 간 해미 자신을 향한 눈부신 성장 역시 빠뜨리지 않을 수 없다.

문득 지난날을 돌이키며 “우리에게 필요한 건 각자의 불안을 견디는 일이었다”(p.120)고 한 해미의 말이 떠오른다. 분명 그것은 몹시 괴로운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저마다의 삶 속에서 제 방식대로 훌륭하게 견뎌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 까닭이리라. 백수린의 장편소설 『눈부신 안부』는 해미의 긴 이야기를 통해 그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만 같다. 그러니까 찬란하게 살면 된다고 말이다.

 

 

 

이대로 도망쳐 또다시 소중한 사람을 잃고 말 거야? 내 안의 누군가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나무들이 잎을 모두 잃고, 곧 눈이 오고 강이 꽁꽁 얼 텐데, 눈이 녹고 강이 녹으면 또 꽃이 필 텐데. 그 모든 풍경 어디에도 이제 우재는 없을 텐데. 쌀쌀한 바람이 나무들이 너울댔다. 가로등 불빛에 천변 너머에서 가을의 잎들이 가볍게 흩날리는 것이 보였다. 생각해야 해. 내 안의 누군가가 다시 속삭였다. 생각해야만 해. 너는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나는 어떻게 살고 싶지? 더 이상 도망치기만 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 p.264

 

 

 

 

 

눈부신 안부 - 10점
백수린 지음/문학동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