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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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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 클레어 키건 | 다산책방 수월한 침묵과 자멸적 용기의 갈림길 그 앞에 움츠러든 한 소시민을 둘러싼 세계 상당히 부당해 보이는 어떤 상황을 목도했을 때, 대개 사람들은 불편한 마음을 뒤로하고 눈감는다. 자기 자신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일이 아닌 이상, 어느 모로 보나 그 편이 합리적인 선택일 것이므로. 그럼에도 때때로 우리는 마주하곤 한다. 침묵하지 않고 용기 내어 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나는 그들 몇몇이 존재하기에 이 세계가 조금이나마 나은 방향으로 굴러가고 있다고 믿고 있다.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 등장하는 빌 펄롱은 그 몇몇 사람 중의 하나였다. 물론 처음부터 용기 낼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그에게는 아내 아일린과 그 사이에서 낳은 다섯 명의 딸을 부양해야 할 책임이 있었기에 주저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맡겨진 소녀 | 클레어 키건 | 다산책방 애정 없는 가족으로부터 먼 친척 부부에게 떠맡겨진 소녀가 인생 처음으로 마주하는 짧고 찬란한 여름 부모 사랑을 모르고 자란 소녀가 — 아이가 없는 — 먼 친척 집에서 머물며 마주한 세계는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아주머니의 손은 엄마 손 같은데 거기엔 또 다른 것, 내가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어서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는 것도 있”(p.24, 25)었고, 아저씨가 손을 잡았을 때는 “아빠가 한 번도 내 손을 잡아주지 않았음을 깨닫고, 이런 기분이 들지 않게 아저씨가 손을 놔줬으면 하”(p.69, 70)면서도 “내가 발을 맞춰 걸을 수 있도록 보폭을 줄”(p.70)이고 있는 것을 알아챈다. 그렇게 소녀는 맡겨진 집에서 낯선 감정을 느끼며 “이런 기분을 또 언제 느꼈었는지 기억하려 애쓰지만 그랬던 때가..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 오스카 와일드 | 열린책들 도리언 그레이는 내가 되고 싶었던 존재이고, 헨리 워튼 경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 자신의 모습이고, 바질 홀워드는 실제 나의 모습이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한 숭배와 그로 인해 자초하고 마는 비극적 말로에 대한 이야기다. 그 중심에 서있는 세 인물 -― 고대 그리스 조각상과 같은 아름다움을 지닌 젊은이 도리언 그레이와 그에게서 예술적 영감을 받고 초상화를 그린 바질 홀워드, 그리고 순수한 영혼이었던 도리언에게 젊음과 쾌락에 눈을 뜨게 하는 헨리 워튼 경 -― 을 지켜보자면, 자연스레 욕망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의 면모들을 떠올리게 한다. 도리언 그레이가 자신의 젊음과 아름다움에 취해 그것을 영원히 지켜내고자 변질되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매 순간 선함과 악함, 아름다움과 ..
잃어버린 것들의 책 | 존 코널리 | 폴라북스(현대문학) 어른이 되면서 잃어버려야 했던 모든 것들에 대한 이야기! 분량이 상당한 편이지만, 이야기가 술술 읽혀서 속도감 있게 읽을 수 있었다. 그만큼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돋보인다. 기존의 동화들이 적절하게 배합돼서 어느 정도 익숙한 듯하면서도 미묘하게 달리 전개되는 흐름도 신선하고. 특히나 주인공 데이빗이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며 알게 되는 인생에 대한 전반적인 깨달음이 우리의 성장 과정과도 크게 다를 바 없기에 한편으로는 진지하게 읽을 수밖에 없었다. 어른이 되면서 잃어버려야만 했던 모든 것들의 이야기를 『잃어버린 것들의 책』 속의 데이빗을 통해 들어보시길. 데이빗은 숲사람을 따라 숲길로 들어섰다. 오솔길을 걷고 시냇물을 지나자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오두막이 보였다. 조그만 뜰에 묶여 있는 말이 평화롭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