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별별책/2016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 오스카 와일드 | 열린책들

반응형

 

[이미지 출처 - 알라딘]

 

 

 

도리언 그레이는 내가 되고 싶었던 존재이고,
헨리 워튼 경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 자신의 모습이고,
바질 홀워드는 실제 나의 모습이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한 숭배와 그로 인해 자초하고 마는 비극적 말로에 대한 이야기다. 그 중심에 서있는 세 인물 -― 고대 그리스 조각상과 같은 아름다움을 지닌 젊은이 도리언 그레이와 그에게서 예술적 영감을 받고 초상화를 그린 바질 홀워드, 그리고 순수한 영혼이었던 도리언에게 젊음과 쾌락에 눈을 뜨게 하는 헨리 워튼 경 -― 을 지켜보자면, 자연스레 욕망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의 면모들을 떠올리게 한다. 

 

도리언 그레이가 자신의 젊음과 아름다움에 취해 그것을 영원히 지켜내고자 변질되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매 순간 선함과 악함, 아름다움과 추함, 영원과 찰나, 고통과 쾌락의 기로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지금의 우리 모습과도 맞닿는 부분이 있지 않나 싶은…, 그런 생각을 하게 한다. 한편으로는 작가 오스카 와일드가 예술과 삶, 이상과 현실, 허상과 실재를 둘러싼 자신의 고뇌를, 환상과 실제를 혼동하고 동일시하려 했던 인간의 욕망이 빚어낸 참극을 통해 드러내 밝히고자 했던 하나의 결과물로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읽어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나는 영원히 젊은 상태로 있고, 그림이 늙어 간다면!
그걸 위해서라면 -― 그럴 수만 있다면 -― 무엇이든 다 줄 텐데! 내 영혼이라도 내줄 용의가 있는데!" 

 

도리언 그레이는 소원하던 대로 시들지 않는 젊음과 아름다움을 소유하게 된다. 순수했던 자신의 영혼을 바친 대가다. 그러므로 그의 순수했던 영혼의 빈자리는 온갖 죄악을 서슴지 않으면서, 오직 쾌락을 향한 광기 어린 욕망에만 몰두해 스스로를 더럽히는 타락한 영혼에게 내주게 된다. 그러나 자신을 대신해 늙고 추악하게 변해가는 초상화를 마주하면서, 살아 있으면서도 죽은 것과 다름없는 자신의 영혼에 분노한다. 애초에 바질이 자신의 초상화만 그리지 않았더라면, 이같은 불행은 없었을 거라고 원망하면서. 이에 급기야는 바질을 없애버리기로 한다. 그런 후에야만 비로소 새로운 삶이 가능하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날로 추악해져만 가는 초상화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도리언은 결국 초상화 마저 없애기로 한다. 끔찍한 영혼의 얼굴을 죽이고, 더럽혀진 과거를 지우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그 칼 끝에 숨을 거두고만 것은 늙고 흉측한 자기자신이었다. 도리언이 그토록 바라 마지않던 젊음과 아름다움이 결국 그 자신을 멸망케 한 셈이다.

 

 

예술가는 아름다운 것을 창조하는 사람이다. 예술은 드러내고 예술가는 감추는 것이 예술의 목적이다.    - p.7 

 

「얼마나 슬픈 일인가!」 도리언 그레이가 자기 초상화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 「얼마나 슬픈가! 나는 늙어 무섭고 흉측한 모습으로 변하겠지. 그런데 이 그림은 항상 젊은 상태로 남을 것이 아닌가. 6월의 오늘보다 더 늙지 않을 게 분명한데……. 거꾸로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영원히 젊은 상태로 있고, 그림이 늙어 간다면! 그걸 위해서라면 - 그럴 수만 있다면 - 무엇이든 다 줄 텐데! 내 영혼이라도 내줄 용의가 있는데!」    - p.47

 

「전 사라지지 않는 아름다움을 지닌 것이면 무엇이든 부럽습니다. 제 모습을 그린 당신의 저 초상화도 부럽고요. 제가 잃을 수밖에 없는 것을 왜 저 초상화는 계속 가질 수 있는 거지요? 흘러가는 순간순간이 저에게서 중요한 것을 빼앗아 저것한테 주겠지요. 아, 반대로만 되었어도! 그림이 변하고 나는 지금 모습대로 영원할 수 있다면! 저 그림을 그린 이유가 뭡니까? 언젠가는 저 그림이 저를 비웃을 겁니다. 모골이 송연해지도록 조롱할 거라고요!」    - p.48

 

초상화는 여전히 아름답지만 어딘가 상처 입은 것 같은 얼굴에 잔인한 미소를 머금은 채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금색 머리칼이 이른 아침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났다. 그 파란 눈이 그의 눈과 마주쳤다. 불현듯 한없는 연민의 정이 온몸에 엄습해 왔다.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이 아니라 그림 속 자신의 이미지에 대한 연민이었다. 초상화는 이미 변해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욱 변할 것이 분명했다. 금색 머리칼은 잿빛으로 시들어 갈 것이다. 붉고 하얀 얼굴빛도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가 죄를 저지를 때마다 더러운 얼룩이 생겨나 아름다움을 훼손할 것이다.    - p.147

 

그는 이제 선택을 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고 느꼈다. 아니 이미 선택이 내려진 것은 아닐까? 그렇다. 인생이 - 인생이, 그리고 인생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그의 호기심이 - 이미 그를 대신해서 결정을 내렸다. 영원한 젊음, 다함이 없는 열정, 은밀하게 찾아오는 쾌락, 미친 듯한 기쁨과 거침없는 죄악. 그는 이 모든 것을 다 누려야 했다. 그리고 그의 불명예의 모든 짐은 초상화가 대신 짊어지고 가야 했다. 이것이 선택의 전부였다.    - p.167

 

「시빌은 달라요! 그녀는 자신만의 가장 훌륭한 비극적 삶을 살았던 겁니다. 그 속에서 그녀는 항상 주인공이었고요. 그녀가 연기했던 마지막 나 밤 - 당신이 그녀를 밨던 바로 그날 밤 - 그녀는 연기를 정말 못 했어요. 이유는 그녀가 사랑의 실체를 알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사랑의 비현실성을 깨달았을 때 그녀는 죽은 겁니다. 줄리엣이 그랬던 것처럼. 그녀는 다시 예술의 영역 속으로 들어간 거죠. 그녀에게는 순교자와 같은 무엇이 있어요. 그녀의 죽음에는 순교자가 지닌 어떤 감동적인 무익성 같은 것이 있어요. 헛되이 버린 아름다움이랄까, 뭐 그런 것 말예요.」    - p.173,174

 

「며칠이 지난 뒤 그림이 내 화실을 떠나게 되었어. 그런데 내가 그 그림을 떠나보내면서 그것이 지닌 엄청난 힘, 사람을 끌어들이는 마법과도 같은 매력을 치우자 이런 느낌이 들더군. 자네가 굉장히 잘생긴 젊은이라는 사실 이상의 것을 내가 보았고, 그것을 그림으로 그릴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었는지. 지금도 나는, 창조 행위에서 느끼는 열정이 창조된 작품 속에 그대로 드러난다고 생각한 것이 잘못이 아니었나 생각하네. 예술은 예술가를 드러내는 것 이상으로 더 완벽하게 예술가를 감춘다고 말이야.」    - p.182

 

「청춘! 세상에 그만한 것이 어디 있겠나. 젊은이들이 무지하다고 말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요즘 내가 존중의 마음으로 귀 기울여 듣는 의견은 오로지 나보다 어린 사람들의 의견일세. 그들이 나보다 앞서 가는 것 같은 느낌이야. 인생이 그들에게 가장 최신의 새로운 경이를 보여 주고 있는 거라고.」   - p.332

 

그를 파멸시킨 것이 바로 그의 아름다움이었다. 그가 간절한 기도로 그토록 원했던 젊음과 아름다움이 그를 멸망케 했다. 이 둘만 없었더라면 그의 인생은 오점 없는 깨끗한 인생이 되었을 것이다. 그의 아름다움은 그에게 가면에 불과한 것이었고, 그의 젊음은 조롱거리에 불과한 것이었다. 청춘이란 게 기껏해야 무엇이란 말인가? 설익은 풋내기 시절, 천박한 기분과 병든 생각으로 점철된 시절이 아니던가? 왜 그 청춘의 제복을 입었단 말인가? 젊음이 그를 망가뜨리지 않았는가?    - p.339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 10점
오스카 와일드 지음, 윤희기 옮김/열린책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