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성복

(2)
그 여름의 끝 | 이성복 | 문학과지성사 오랫동안 나는 슬픔에 대해 생각해왔다 사랑을 생각한다. 만남과 이별 사이, 삶의 희열이 충만했던 그 여름을 생각한다. 머지않아 폭풍이 밀려오고 장대비가 쏟아졌던 그 여름을 생각한다. 그 계절, 한복판의 나를 생각한다. 그 여름의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한차례 폭풍에도 그 다음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아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습니다 그 여름 나는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여름 나의 절망은 장난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지만 여러 차례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 억센 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 p.117 「그 여름의 끝」 그 여름의 끝 - 이성복 지음/문학과지성사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 이성복 | 문학과지성사 이성복 시인이 1978,79년에 쓴 시를 묶어 1980년에 출간한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스쳐 지나가는 것,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의 마음이 요 몇 년 새 급격히 커졌다. 아마도 폴 오스터의 『타자기를 치켜세움』을 읽은 직후, 알게 모르게 그런 마음이 표면적으로 의식화 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정작 그땐 몰랐지만 사라지고 뒤늦게서야 깨닫게 되는 소중함과 조금 더 아껴줄 걸 싶은 안타까움, 그리고 그 뒤에 찾아오는 헛헛함은 스쳐 지나갔음에 대한 자책으로 곧잘 연결됐기에 더 마음 쓰이고 아팠던 거라 생각한다. 우연히 스치는 질문 ----- 새는 어떻게 집을 짓는가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풀잎도 잠을 자는가, 대답하지 못했지만 너는 거기서 살았다 붉게 물들어 - 3 중에서 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