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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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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녹는 온도 | 정이현 | 달 녹을 줄 알면서도 눈사람을 만드는 당신을 위하여 녹을 줄 알면서도 눈사람을 만드는 건 눈덩이를 굴렸던 기억, 그 안에 깃든 선한 마음 때문은 아닐는지. 그것만은 사라지지 않고 여기 어딘가에서 반짝이고 있을 거라는 믿음이 오늘도 시린 손을 호호 불며 눈덩이를 굴리게 하는 거라고 생각해 본다. 그렇다면 혼자 혹은 둘이서, 때로는 여럿이 모여 만든 눈사람은 타인과 관계를 맺고 교감하며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탐색과 노력의 행위로도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수록된 이야기들을 읽자면, 자연스레 서로 다른 온도를 품고 있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대하여 주목하게 된다. 어떤 상황 안에서 느끼는 감정들은 그들 사이에서 맺어진 긴밀한 관계 안에서 오르락내리락하며 적정한 온도를 찾아가기 마련이다. 설사 그것이 도저히 불가..
상냥한 폭력의 시대 | 정이현 | 문학과지성사 미소 없이 상냥하고 서늘하게 예의 바른 위선의 세계, 무서운 것도, 어색한 것도, 간절한 것도 '없어 보이는' 삶에 질기게 엮인 이 멋없는 생활들에 대하여 표지 한 편으로 가지런히 열 맞춰 놓인 활자 '상냥한 폭력의 시대'를 눈으로 읽으며, 무심코 그런 생각을 했다. 상냥한데 폭력적이라니…?? 하지만 실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알게 모르게 나는, 그리고 우리는 일상에서 상냥함을 가장한 폭력의 아이러니를 겪어오지 않았던가.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자리가 바로 그런 시대의 한가운데임을 머리보다는 가슴 깊숙이에서부터 이미 수긍하고 있었던 상태였기 때문이리라. 그런 생각에까지 미치니, 책을 펼치는 것에 덜컥 겁이 났다. 어쩐지 그간 애써 외면해왔던 혹은 가까스로 담담하게 맞닥뜨려왔던..
말하자면 좋은 사람 | 정이현 | 마음산책 잠시 혼자였던 바로 그 순간에 대하여 누구나 겪어봤을 법한 지극히 일상적인 소재를 담고 있어 낯설지 않았던 점이 좋았다. 그리고 이전에도 느꼈지만, 그럴만한 요소들을 놓치지 않고 포착해낸 예리한 시선에 감탄하기도. 그러므로 누구라도 이 얘긴 내 얘기 아냐? 싶은 순간을 더러 마주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잠시 혼자였던 바로 그 순간에 대하여 쓰고 싶다던 을 읽으면서, 그 순간이란 어떤 찰나를 말하는 것일지 너무 막연해서 오히려 궁금해졌었다. 그런데 한 편, 두 편 읽다 보니 알 것 같다. 분명 나에게도 그런 순간들이 곧잘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바람처럼 스쳐가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나에 대해 그리고 지금 맞은편에서 걸어오고 있는 타인에 대해 문득 궁금증이 생긴다면,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오늘을 살아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