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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18

우리가 녹는 온도 | 정이현 |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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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녹을 줄 알면서도 눈사람을 만드는 당신을 위하여

 

 

녹을 줄 알면서도 눈사람을 만드는 건 눈덩이를 굴렸던 기억, 그 안에 깃든 선한 마음 때문은 아닐는지. 그것만은 사라지지 않고 여기 어딘가에서 반짝이고 있을 거라는 믿음이 오늘도 시린 손을 호호 불며 눈덩이를 굴리게 하는 거라고 생각해 본다. 그렇다면 혼자 혹은 둘이서, 때로는 여럿이 모여 만든 눈사람은 타인과 관계를 맺고 교감하며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탐색과 노력의 행위로도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수록된 이야기들을 읽자면, 자연스레 서로 다른 온도를 품고 있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대하여 주목하게 된다. 어떤 상황 안에서 느끼는 감정들은 그들 사이에서 맺어진 긴밀한 관계 안에서 오르락내리락하며 적정한 온도를 찾아가기 마련이다. 설사 그것이 도저히 불가능할지라도 관계를 지속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그 차이를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그들 사이에 놓인 과제일 것이다. 그것은 말하자면, 녹을 것을 알면서도 눈덩이를 굴렸던 까닭이랄 수도 있겠다. 그러므로 이는 곧, 눈사람이라는 결과물 자체보다는 그것을 만들기 위해 애썼던 과정, 그 안에 담긴 마음이 더 귀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다. 문득 이런저런 단상들 사이로 이야기 속 그들이 느꼈을 감정선이 현실의 내게 고스란히 전이됨을 느낀다. 그것은 아마도 무수한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공통된 경험과 사유에 기반한 이유였으리라. 어느 누가 읽더라도 이질감 없이 스며들을 수 있는, 간결하지만 은은하게 여운이 남는 이야기 산문이랄 수밖에.

 

『우리가 녹는 온도』는 짤막한 이야기 '그들은,'에 산문 '나는,'을 더한 구성으로, 총 열 편― 「화요일의 기린」, 「괜찮다는 말, 괜찮지 않다는 말」, 「안과 밖」, 「여행의 기초」, 「지상의 유일한 방」, 「물과 같이」, 「커피 두 잔」 「어둠을 무서워하는 꼬마 박쥐에 관하여」, 「장미」, 「눈+사람」 ― 을 수록하고 있다. 

 

 

"속이 상할 때는요, 따뜻하고 달콤한 걸 먹으면 도움이 좀 되더라고요. 제 경우에는요. (…) 그렇다고 상한 마음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잠시 잊을 수 있으니까요."            - p.164 「그들은, 눈+사람」
사라진 것들은 한때 우리 곁에 있었다. 녹을 줄 알면서도, 아니 어쩌면 녹아버리기 때문에 사람은 눈으로 '사람'을 만든다. 언젠가 죽을 것을 알면서도 오늘을 사는 것처럼.    - p.170 「나는, 눈+사람」

 

 

 

 

 

우리가 녹는 온도 - 8점
정이현 지음/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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