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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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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 최승자 | 난다 32년 만에 증보하여 펴내는 시인 최승자의 첫 산문! ‘내일의 불확실한 희망보다는 오늘의 확실한 절망을 믿는다.’는 시인의 말에 폐부 깊숙이 찔린 기분이었던 것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 강렬했던 첫 시집 『이 시대의 사랑』과 이후의 『즐거운 일기』는 한동안 - 이라기에는 상당한 기간 동안 - 늘 내 가까이에 있었다. 가만히 돌이켜 보건대 그때의 나는, 나를 흔드는 바람과 애초에 그리 깊지 못했던 뿌리에 대한 감춰지지 않는 열패감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고자 하는데 필사적이었다. 말하자면, - 쥐어짜는 안간힘에 가까웠다고 생각하지만, - 내 나름의 저항이었다고도 생각된다. 그런 나날이어서 그랬을까. 그때에 만난 시인의 시는 호기롭게 다가왔다. 후련하고도 통쾌한 맛이 있었다. 단 한 번도 생각지 못한 유(類)의..
즐거운 일기 | 최승자 | 문학과지성사 방법적 비극, 그리고 ―――― 최승자의 시 세계 이따금 최승자 시인의 시를 떠올린다. 첫 시집이었던 『이 시대의 사랑』의 시들이 그랬다. 온통 비극뿐인 세계 안에서도 움츠러들지 않고, ― 분노하고 발악하며 때론 냉소적으로 ― 강단 있게 맞서 나가는 모습에서 묘한 힘을 얻었던 지난날의 기억이 뇌리에 박힌 이래로 쭉 그래 왔다. 작년에 펴낸 『빈 배처럼 텅 비어』의 시들도 곱씹어 읽어 보았지만, 지금의 나에겐 초탈한 인간보다는 사투하는 인간형이 더 매력적이고 훨씬 끌렸으므로 첫 시집에 유독 손이 갔던 것이리라. 그래서 이번에는 1984년 발간한 시인의 두번째 시집, 『즐거운 일기』를 펼쳐 보았다. 역시나 시인의 젊은날에 쓰인 시들은 최근작에 비해 한층 호기롭게 절망을 마주한다. 비극의 절정에서 한결 빛을 발..
빈 배처럼 텅 비어 | 최승자 | 문학과지성사 병들고 아픈 시대에 대한 혹독한 예감 ‘살아 있음’에 대한 이토록 치열한 존재 증명 최승자 시인의 『이 시대의 사랑』은 내 청춘의 시기를 함께 해준 그야말로 인생 시집이라고 여길 정도로 특별한 시집이다. 지금도 가끔씩 펼쳐보고 있을 정도로 애지중지하고 있는데, 서점 한 구석에서 우연히 발견했던 그날이 지금까지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책꽂이에서 꺼내어 무작위로 펼쳐진 페이지에서 처음 읽었던 시는 「꿈꿀 수 없는 날의 답답함」이었다. 오랜 궁리 끝에 일체의 불필요한 단어들은 제하고 오직 정제된 단어들로만 이루어진, 요샛말로 대단한 걸 크러쉬를 불러일으키는 시였다. '아 썅!'을 마음속으로 따라 읽는 것만으로도 묵은 체증이 확 뚫리는 듯한 소화제 같은 시였달까. 충격과 놀라움의 연속이었고, 어떤 의미에서..
이 시대의 사랑 | 최승자 | 문학과지성사 최승자 시인의 첫 시집 일전에 신경숙 작가의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를 읽으면서, 최승자라는 시인의 이름과 마주한 기억이 있다. 아쉽게도 그 시는 최승자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즐거운 日記』에 포함되어 있어서 아직 읽어보진 못했지만. 이번에 내가 골라 든 『이 시대의 사랑』은 최승자의 첫 번째 시집이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쓰인 시들이지만, 이 시집에는 시대를 뛰어넘어 공감할 수 있는 심오한 무언가를 담고 있는 듯한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세월이 흘러도 절대 변하지 않는 인간 본연의 복잡다단한 감정을 건드리는 시들이어서 그럴까. 내일의 불확실한 희망보다는 오늘의 확실한 절망을 믿는다. 이 시대의 사랑 - 최승자 지음/문학과지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