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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22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 최승자 |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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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32년 만에 증보하여 펴내는 
시인 최승자의 첫 산문!

 

 

 

‘내일의 불확실한 희망보다는 오늘의 확실한 절망을 믿는다.’는 시인의 말에 폐부 깊숙이 찔린 기분이었던 것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 강렬했던 첫 시집 『이 시대의 사랑』과 이후의 『즐거운 일기』는 한동안 - 이라기에는 상당한 기간 동안 - 늘 내 가까이에 있었다. 가만히 돌이켜 보건대 그때의 나는, 나를 흔드는 바람과 애초에 그리 깊지 못했던 뿌리에 대한 감춰지지 않는 열패감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고자 하는데 필사적이었다. 말하자면, - 쥐어짜는 안간힘에 가까웠다고 생각하지만, - 내 나름의 저항이었다고도 생각된다. 그런 나날이어서 그랬을까. 그때에 만난 시인의 시는 호기롭게 다가왔다. 후련하고도 통쾌한 맛이 있었다. 단 한 번도 생각지 못한 유(類)의 저항이었던 것이리라. 마침 시인은 자신이 ‘시적 저항’을 하고 있음에 대하여 아주 오래전 글로 밝혀 두었고, 자신의 첫 산문집이었던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에 실었다. 시적 저항……, 바로 그것이었다. 내가 그토록 시인의 시에 매료됐던 까닭 말이다. 때로는 ‘의식보다 무의식, 이성보다는 감성에 더 기대’(p.140)를 할 필요도 있음을 알려줬으므로. 그 시기, 내게 필요로 한 것은 자기 자신에게 조금 더 솔직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었고, 시인의 시들이 그것을 각성하게 한 것이다. 그렇기에 내 지난날에 만난 시인의 시는 특별했고, 지금에도 그 소중함이란 어찌 유효하지 않을 수 있을까.

 

 

 

떠난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로, 자기 자신의 현실 속으로 되돌아오기 위한 것이다. 끝과 시작처럼 떠난다는 것과 되돌아온다는 것은 하나이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떠남으로써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그렇게 무수히 떠나고 무수히 되돌아오면서 많은 시간을, 그것도 대부분 괴로움과 불행의 시간을 바침으로써 우리가 얻게 되는 것은 어쩌면, 행복이란 별도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불행이 없는 것이 행복이라는, 조금은 쓴, 그러나 넉넉한 인식뿐일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인간은 상처투성이의 삶을 통해 상처 없는 삶을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하는 모순의 별 아래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상처 없는 삶과 상처투성이의 삶. 꿈과 상처,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일상을 더욱 굳건하게 받쳐주는 원리, 한 몸뚱이에 두 개의 얼굴이 달린 야누스의 원리이다. 인간은 강하되, 그러나 그 삶을 아주 떠나지는 못하고, 아주 떠나지는 못한 채, 그러나 수시로 떠나 수시로 되돌아오는 것일진대, 그 삶을 위해 우리가 무슨 노력을 하였는가 한번 물으면 어느새 비가 내리고, 그 삶을 위해 우리가 무슨 노력을 하였는가 두 번 물으면 어느새 눈이 내리고, 그사이로 빠르게 혹은 느릿느릿 캘린더가 한 장씩 넘어가버리고, 그 지나간 괴로움의 혹은 무기력의 세월 위에 작은 조각배 하나 띄워놓고 보면, 사랑인가, 작은 회한들인가, 벌써 잎 다 떨어진 헐벗은 나뭇가지들이 유리창을 두드리고, 한 해가 이제 그 싸늘한 마지막 작별의 손을 내미는 것이다. 그러나 그 헐벗음 속에서, 그 싸늘한 마지막 작별 속에서 이제야 비로소 살아 있다고, 살아야 한다고 말할 차례일지도 모른다.    - p.59, 60 「떠나면서 되돌아오면서」 중에서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 10점
최승자 지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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