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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17

즐거운 일기 | 최승자 |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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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방법적 비극, 그리고 ―――― 최승자의 시 세계

 

 

 

이따금 최승자 시인의 시를 떠올린다. 첫 시집이었던 『이 시대의 사랑』의 시들이 그랬다. 온통 비극뿐인 세계 안에서도 움츠러들지 않고, ― 분노하고 발악하며 때론 냉소적으로 ― 강단 있게 맞서 나가는 모습에서 묘한 힘을 얻었던 지난날의 기억이 뇌리에 박힌 이래로 쭉 그래 왔다. 작년에 펴낸 『빈 배처럼 텅 비어』의 시들도 곱씹어 읽어 보았지만, 지금의 나에겐 초탈한 인간보다는 사투하는 인간형이 더 매력적이고 훨씬 끌렸으므로 첫 시집에 유독 손이 갔던 것이리라. 그래서 이번에는 1984년 발간한 시인의 두번째 시집, 『즐거운 일기』를 펼쳐 보았다.

 

역시나 시인의 젊은날에 쓰인 시들은 최근작에 비해 한층 호기롭게 절망을 마주한다. 비극의 절정에서 한결 빛을 발하는 시인의 시들을 읽으며, 나는 그 지지 않는 매서움과 열정에 다시금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비극성의 세계는 오늘의 나를 각성하게 만들었고, 시인의 시를 마주했던 수많은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으리라 믿는다. 시집에 담긴 목소리들은 '시시하고 미미하고 지지하고 데데한 비극'을 마주하는 절망 안에서도 결코 굴하지 말라고 우리를 다그친다. 다시 일어서 나아갈 수 있도록 마음을 추스르게 만든다. 최승자 시인이 이룩한 비극성의 세계 안에서 온전하게 극대화되는 이 마법에 나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를테면, '내가 견뎌내야 할 비극'에 대하여 생각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당분간은 이 시집에만 집중하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비극


죽고 싶음의 절정에서
죽지 못한다, 혹은
죽지 않는다.
드라마가 되지 않고
비극이 되지 않고
클라이막스가 되지 않는다.
되지 않는다,
그것이 내가 견뎌내야 할 비극이다.
시시하고 미미하고 지지하고 데데한 비극이다.
하지만 어쨌든 이 물을 건너갈 수밖에 없다.
맞은편에서 병신 같은 죽음이 날 기다리고 있다 할지라도.

 

 

 

 

 

즐거운 일기 - 10점
최승자/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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