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에밀리 디킨슨에게 바치는 애정과 경의
한정된 장소에서 고독한 삶을 살며 글쓰기에 몰두한 두 영혼이 있다. 『흰옷을 입은 여인』은 평생 한 곳에서 글 쓰는 삶을 살았던 프랑스의 시인이자 에세이스트 크리스티앙 보뱅(1951-2022)이 역시 일생을 애머스트의 자신의 방에서 시를 쓰며 은둔의 삶을 살았던 미국의 여성 시인 에밀리 디킨슨(1830-1886)을 기리며 써 내려간 경의의 문장들이다.
그 안에서 나는 “너무도 열렬히 자기 자신으로 존재”(p.100)했던 두 영혼을 마주한다. 시끌벅적한 세상의 한복판에서 앞다투어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수많은 이들을 일순 겸연쩍게 하는 삶을 살아간 이들을. 겉으로 보이는 것이 아닌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며 오로지 “하나의 영혼으로 존재하는 본질적인 자유”(p.111)를 탐했던 그들을. 그리하여 온통 글 쓰는 것에만 몰두함으로써 어느 누구보다 자신의 삶 안에서 온전하게 존재하는 법을 터득했던 두 영혼을.
“너무도 순결해 한 마리 꿀벌이 총알처럼 가로지르는, 세상 무엇도 침투할 수 없는 마음”(p.150)에 가닿을 수 있기를 소망하며.
태어나는 순간 아이들 각자에게 무언가가 주어진다. 무無나 다름없는 무엇. 형태도 이름도 없으며, 영예랄 것도 전혀 없는 무엇.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유일한 재산이다. 언뜻언뜻 섬광처럼 보이는 것. “살아 있다는 단순한 느낌 자체가 내겐 황홀경이다.”라고 에밀리는 말한다. 그 무의 흰 꽃이 때때로 붉은 심장 속에서 피어난다. 성인들에게서 공통적으로 찾아지는 꽃, 절대로 시들지 않는 꽃이다. 성스럽다는 건, 살아 있다는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 - p.57, 58
흰옷을 입은 여인 -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이창실 옮김/1984Books |
반응형
'별별책 > 2024'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빈방 | 박완서 | 열림원 (0) | 2024.07.27 |
---|---|
푸르른 틈새 | 권여선 | 문학동네 (0) | 2024.07.20 |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 이병률 | 문학과지성사 (0) | 2024.07.13 |
무엇이든 가능하다 |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 문학동네 (0) | 2024.07.06 |
제철 행복 | 김신지 | 인플루엔셜 (0) | 2024.06.22 |
모든 것을 본 남자 | 데버라 리비 | 민음사 (1) | 2024.06.15 |
이제 아픈 구두는 신지 않는다 | 마스다 미리 | 이봄 (0) | 2024.06.08 |
철학은 날씨를 바꾼다 | 서동욱 | 김영사 (0) | 2024.06.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