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라는 불가해한 어둠 속에서
총총히 빛나는
선하고 다정한 순간들
『내 이름은 루시 바턴』에서 루시 바턴이 자랐던 미국 일리노이주의 작은 마을 앰개시를 중심으로 얽히고설킨 인물들의 삶을 아홉 편의 단편을 통해 엮고 있다. 그런 까닭에 제각기 독립된 이야기이면서도 한 걸음 물러나 보면 희미하게 때로는 또렷하게 연결성을 가진다. 더욱이 그들은 각자가 직면한 고민과 걱정 그로 인한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측면에서 더없이 유기적으로 다가오는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그들이 표면적으로는 지난날의 상처를 극복한 듯 보이지만 내면적으로는 결코 그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면모를 보인다는 데에 있다. 더군다나 우리가 그 어떤 부연 설명 없이도 수긍하고 마는 것은 그들 모습에서 발견하는 추체험의 영향 때문이리라. 가라앉았다가도 한순간의 휘저음으로 혼탁해지고 마는 우리의 연한 마음을 너무도 잘 알기에. 동시에 이런 마음들이 우리를 겸손한 존재로 살아가게 한다는 생각 역시 하게 된다. 한편 그들이 마주하는 크고 작은 통찰의 순간에 대해서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으리라. “자신이 중요한 뭔가를 보았다는 사실을”(p.206) 혹은 풀리지 않던 수수께끼 같은 일에 대하여 비로소 “이해할 것 같다고 느”(p.87)끼는 순간을 말하는 것이데, 그러한 때야 말로 불가해한 삶을 번뜩이게 하는 한줄기 빛의 순간으로 작용하는 연유다. 그것은 마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딪혀 살아가 보겠다는, 그러니까 애니가 흥얼거렸던 노랫말처럼 “내가 살아 있다는 건 정말로 기쁜 일, 내가 살아 있다는 건 정말로 아주 기쁜 일……”(p.298)처럼 생을 향한 자기 주문과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그래,
바로 거기 있었다,
온전한 깨달음이.
누구에게나 무엇이든 가능하다.
- p.347, 「선물」
무엇이든 가능하다 -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문학동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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