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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23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 무라카미 하루키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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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마음속에 비밀을 품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해, 우리는 둘만의 비밀 도시를 만들었다

 

 

 

아주 오래전 소년은 소녀를 만났고 함께 도서관에서 일하며 높은 벽에 둘러싸인 세계를 공유한다. 그러나 이 모든 건 한낱 꿈에 불과했던 걸까. 지금 속해 있는 현실 속에서 소년은 어느덧 중년이 되었고, 또렷하게 설명할 수 없는 — 그러나 도서관 꿈만은 선명하게 꾸는 — 어떤 이끌림에 의해 사직서를 제출하고 도쿄를 떠나 깊은 산간지방의 도서관으로 일자리를 옮긴다. 거기서 전임 도서관장이었던 고야스씨와 은밀한 만남을 이어가며 오랜 시간 자신을 사로잡았던 꿈, 또다른 세계의 현실이기도 했던 벽에 둘러싸인 도시에 한 발짝 다가서게 된다. 그 안에서 자연스레 내 안의 세계를 떠올려본다.

저마다 사람들은 발 딛고 있는 세계와는 별개로 자기 안에 또다른 세계를 품고 살아가기 마련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문예지에 발표하고 꼭 43년 만에 완성해 낸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어쩌면 하루키 자신이 오랜 시간 비밀스레 품어온 세계와 자신이 실재하는 세계 안에서 끊임없이 줄다리기 한 끝에 쓰였기에 완성하기까지 이토록 적잖은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리라 짐작한다. 그는 소설 속 주인공인 ‘나’에 의지하여 이렇게 적고 있다.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현실이 아닌가? 아니, 애당초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 짓는 벽 같은 것이 이 세계에 실제로 존재하는가?”(p.684) 이 물음에서 출발하여 사십여 년의 세월 속에서 작가 나름의 결론에 다다랐고, 이 소설이 그것의 결과물로서 맺어진 것으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이다. 하루키는 이렇게도 덧붙였다. “벽은 존재할지도 모른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니, 틀림없이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불확실한 벽이다. 경우에 따라, 상대에 따라 견고함을 달리하고 형상을 바꿔나간다.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p.684) 이라고. 오랜 시간 높은 벽에 둘러싸인 세계를 헤맨 끝에 알게 된 그것의 속성일 것이다.

덧붙여 ‘영혼이 앓는 역병’을 차단하기 위한 제 안의 의식의 한 형태임을, 나아가 그 불확실함을 인정하기에 어느 순간에도 자신의 마음을 진심으로 믿는 것이 중요함을 담아두려 한다.

 

 

벽의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고개를 들지 않고 똑바로 달려 그 앞에 있을 벽으로 돌진했다. 여기까지 온 이상 그림자의 말을 믿는 수밖에 없다.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나는 온 힘을 쥐어짜 의심을 버리고 나 자신의 마음을 믿었다.    - p.206 「1부, 24장」

 

 

나는 오른쪽 귓불을 손끝으로 살며시 만져봤다. 부드럽고 따뜻한 귓불에 통증은 더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통증이 남은 건 내 의식의 안쪽뿐이다. 그리고 그 통증은, 그 또렷한 잔존 기억은 이제 그 자리에서 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 그건 뚜렷한 열을 품은 각인과도 같다. 한 세계와 또다른 세계의 경계를 초월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고통을 수반하는 각인. 나는 아마도 그것을 내 존재의 일부로 간직한 채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 p.667 「2부, 60장」

 

“마음으로 원하기만 하면 됩니다. (…) 당신의 마음은 하늘을 나는 새와 같습니다. 높은 벽도 당신 마음의 날갯짓을 막을 수 없습니다. 지난번처럼 굳이 그 웅덩이까지 찾아가 몸을 던질 필요도 없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분신이 그 용감한 낙하를 바깥세계에서 안전하게 받아줄 거라고, 진심으로 믿으면 됩니다.”    - p.754 「3부, 69장」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 8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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