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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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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 아고타 크리스토프 | 까치 쌍둥이 형제의 처절한 운명이 교차하는 3부작 소설 모든 인간 군상이 악착같다. 삶을 붙들고자, 때로는 벗어나고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몸부림을 치는 것이리라. 각자의 가슴에 품은 욕망과 좌절, 상처와 두려움, 희망과 절망은 온통 암흑 뿐인 세계 안에서 한층 명확해지지만, 차라리 인간 존재의 불확실성을 극명히 마주하게 한다는 표현이 더 적확해 보인다. 그 허약한 존재의 쉽사리 가늠할 수 없는 삶 이야기라서 애잔하고, 더 아름다운 건지도 모르겠다. #01. 「비밀 노트」 쌍둥이 형제가 엄마 손에 이끌려 도착한 할머니 집은 어느 국경의 작은 마을이다. 엄마는 그곳에 형제를 두고 떠나고, 괴팍한 할머니 밑에서 살게 된 아이들은 스스로를 단련하며 살아 남기 위해서라면 어떤 것도 마다하지 않는 치열한 생존 방식을 터득..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 황현산 | 난다 밤이 선생이다 | 황현산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 황현산 ▒ 2019/02/09 - [별별책] - 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우리는 늘 사소한 것에서 실패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은 흥미롭다. 더욱이 그 시선의 끝에서 어떤 신세 byeolx2.tistory.com 우리는 늘 사소한 것에서 실패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은 흥미롭다. 더욱이 그 시선의 끝에서 어떤 신세계를 발견했을 땐 황홀 하달 수밖에. 드문 일이긴 하지만, 내심으로는 그것을 바라고 계속적으로 책을 읽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은 상당 부분 부응한다. 이를테면, 진정성의 힘은 아닐는지. 사람과 사회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과 사랑이 글로써 전해진 이유일 수도 있겠다. 근래 우리 사회가 겪은 일련의 사태..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 곰돌이 푸 | 알에이치코리아 추억의 만화 『곰돌이 푸』에서 발견한 오늘의 행복을 부르는 마법의 문장들 온종일 꿀통을 품 안에 끌어안고 다니던 푸가 이런 근사한 말을 하는 곰돌이였던가, 새삼 감탄하며 되뇌어 본다. 그러고는 마음속에 꾹꾹 눌러 담는다. 한참을 그렇게 반복하다가 문득 내 유년 시절은 앤도 있었고, 하니랑 영심이도 있었고, 강백호에 곰돌이 푸까지 좋은 친구들이 참 많았었구나, 살짝 달뜬 기분이 됐다. 정말이지 행복한 아이였다. 비록 그땐 그 모든 이야기들을 미처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분명 알게 모르게 순한 영향력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더욱이 이제는 온전하게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나이도 먹었으니, 한층 반갑고 고맙고 새로울 수밖에.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자신이 옳다고 믿는 길이 최선의 길입니다. 자신감을 갖고 ..
사는 게 뭐라고 & 죽는 게 뭐라고 | 사노 요코 | 마음산책 시크한 독거 작가의 일상·죽음 철학 삶을 대하는 사노 요코(佐野洋子)의 의식과 행동에는 조금의 거침도 없다. 그저 살아가야 할 일상을 살아낼 뿐. 시시각각 맞닥뜨리는 감정들을 솔직하게 받아들이는 한편 감수해야 할 것은 기꺼이, 털어낼 것은 미련 없이 내어 놓는 식이다. 사소한 질척거림 조차 찾아볼 수 없는 삶의 태도는 자신이 중병에 걸린 것을 알은 뒤에도 변함이 없다. 외려 직시하게 된 죽음 앞에서 한층 발랄해 보이기까지 하다. 죽음을 삶에서 외따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부로써 바라보는 ― 정확히는 그렇게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정리가 된 ― 까닭일 것이다. 그렇기에 삶에 관한 자질구레한 미련 따위, 죽음에 대한 걱정 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저 숨 쉬고 있는 동안은 살아갈 따름이라는, 죽음 앞의 ..
今日も一日きみを見てた(오늘 하루도 너를 보고 있었다) | 角田光代 | 角川文庫 처음이어서 서툴고 모든 것이 신비로운 가쿠타 미쓰요 애묘 에세이! 「うちの猫が子ども産んだら、ほしい?("우리 고양이가 새끼 낳으면 키우고 싶어요?")」라는 느닷없는 제안에 순순히 좋다고 대답한다. 실은 고양이를 키워본 적도, 설사 반려동물을 들인다고 하더라도 절대적으로 고양이보다는 강아지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말이다. 그렇게 엉겁결에 맞이하게 된 새끼 고양이가 이 에세이의 주인공 토토다. 처음 키워보는 탓에 하나에서 열까지 모르는 것 투성이지만, 서로를 알아 가고자 하는 노력 속에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가족으로 거듭난다. 평소라면 절대 무리라고 생각했던 일들…, 이를 테면 끝까지 남곤 했던 술자리에서의 지난날의 자신이 무색하게 혼자 있는 토토를 걱정하며 귀가를 서두른다든지, 오랜 고심 끝에 거금을 ..
나는 언제나 옳다 | 길리언 플린 | 푸른 가장 짧고 가장 섬뜩하고 가장 강렬하다 수전을 믿어요, 나를 믿어요? 누구 말을 믿을 지는 아줌마 마음에 달린 거죠. 마일즈의 당돌한 물음이 당혹스럽다. 그것은 느닷없이 뒤통수 한 대를 갈겨 맞기라도 한 듯한 의식의 각성을 동반한다. 누구의 말이 맞는지, 진실의 진위 여부를 알아채고자 하는 노력조차 무의미하게, 이야기는 제 말만 하고 가차 없이 마침표를 찍고 있기에 한결 막막하기까지 하다. 물론 소설 속 ‘나’ 역시 혼란스러워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녀는 외려 쉬이 마음을 결정한 듯 보인다. 어쩌면 그녀가 놓인 처지는 파헤쳐 진실을 아는 것 보다 이렇게 된 이상 마일즈의 말이 진실이기를, 아니 그래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편이 낫겠다는 판단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사건에 일절 연루되..
좀도둑 가족 | 고레에다 히로카즈 | 비채 가족을 넘어 ‘인연’을 말하는, 여름을 닮은 소설! 세상을 바라보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시선과 감성을 좋아한다. 거창하고 대단한 무언가가 아닌, 우리 주변 어디에서 일어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법한 평범하고 소박한 소재를 더없이 잘 풀어내는 이유다. 더욱이 가족이란 무엇일까, 그 의미를 되새겨 보게 하는 작품들이 눈에 띄는데, 뒤바뀐 아들을 대하는 부모의 심정과 심경의 변화를 통해 자식과 부모의 관계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했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와 배다른 동생을 받아들이는 세 자매가 비로소 네 자매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린 『바닷마을 다이어리』가 우선적으로 떠오른다. 최근 『어느 가족』이라는 타이틀로 개봉한 영화 역시 비슷한 선상에 있다. 『좀도둑 가족』은 영화 『어느 가족』을 고레에다 감..
아흔일곱 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 | 이옥남 | 양철북 아흔일곱 살, 한 사람의 기록 올해로 아흔일곱 살인 이옥남 할머니가 1987년부터 서른 해가 넘도록 써온 일기를 추려 펴낸 책이다. ‘책을 내면서’에서 밝히듯, 할머니는 ‘남편이 저 세상 가고 나 혼자 살다 보니 적적해서 글씨나 좀 나아질까 하고 도라지 까서 판 돈으로 공책을 사서 쓰기 시작한 것이 손주가 그것을 일기라고 소문을 내서 이렇게까지 되었’다고 적고 있다. 그 ‘고맙기도 하고 민망스럽기도(p.212)’하다는 할머니의 일기장이 전하는 온기가 마음을 따스하게 하는 한편 코끝을 찡하게 한다. 그것은 흙 한 줌, 곡식 한 알도 허투루 보지 않으며, 지저귀는 새소리에 애달파하기도, 한겨울의 산짐승에 마음을 쓰기도 하는 할머니의 정겹고 따뜻한 마음씨 때문이리라. 더욱이 소박한 일상 속에서도 도시로 나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