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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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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은 장미 | 은희경 | 문학동네 나를 잊기 위해 떠나온 곳에서 뜻밖에 나 자신이 선명해지는 감각 인생의 가장 예외적인 시간이 나에게 남긴 모든 것 일상 아닌 곳으로 발걸음 하는 일이 내게는 정기적인 의례와도 같았다. 실상 그것은 외로운 일이었고 손톱만큼의 서러운 일이기도 했지만, 새로운 일말의 전환과 이를 위한 정신적 쉼을 갈구하던 나에게 그것은 감수할만한 값어치로 여겨졌다. 나 이외의 다른 이유를 갖다 붙이지 않고 내키는 대로 어디로든 내딛을 수 있다는 것은 곧, 이 삶이 오직 나로부터 시작해서 나의 의지로만 매듭지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안도의 작업이기도 했으니까. 거짓 없는 감정과 그에 따른 행위는 공간이 주는 낯섦 안에서 한층 유연하고도 대담해질 수 있었고, 그런 여유 있는 자신을 만나는 일이 퍽 근사하게 다가왔던 것 일수도..
그것은 꿈이었을까 | 은희경 | 문학동네 그래도 사랑에 관해서라면, 발밑까지 타들어갈지언정 길고 긴 꿈을 꾸고 싶다 #. 01 꿈을 꾼다. 어떤 날은 무슨 꿈을 꾼 것 같긴 한데, 도무지 떠올려지지 않는 꿈도 꾼다. 그래도 좋았는지 나빴는지 혹은 이도 저도 아닌 꿈이었는지는 알 수 있다. 기묘하게도 꿈의 잔상은 어렴풋하게나마 남는 것이다. 나는 그 점을 무척이나 진지하고도 신기하게 여겨왔다. 그런 날에는 온종일 희미한 기억 사이에서 전해지는 꿈의 뒷맛을 다시며 그것에 메여있기 일쑤다. #. 02 은희경의 『그것은 꿈이었을까』에 등장하는 '준'은 꿈속에서 한 여자를 만난다. 그리고 친구 진과 함께 방문한 고시원 레인 캐슬에서 묘령의 여인과 마주한다. 꿈과 현실의 경계를 넘어 자신을 만나러 오는 여인, 그렇게 이 소설은 시작된다. #. 03 진에게..
안녕 다정한 사람 | 은희경 외 | 달 그래서 그곳이 그대가 그립다 『안녕 다정한 사람』은 서로 다른 여행지를 다녀와, 그곳에서 그들 나름대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담은 여행 에세이다. 10인의 여행은 저마다의 포커스를 가지고 있다. 누군가는 대자연 앞에서 순수한 소녀적 감성을 되살려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또 다른 이는 평소 즐겨 마시던 와인 혹은 맥주에 시선을 고정한다. 물론 서로 다른 나라와 도시를 여행한 이유도 있겠지만, 분명 같은 나라, 같은 도시를 여행한다고 하더라도 놀라우리만큼 그들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풀어냈을 것이다. 그런 점을 포착하는 것이 흥미로우면서도 친한 지인과 여행을 갔다가 의견 차로 다투고 왔다는 얘기들을 심심치 않게 듣게 되는 이유지 않을까 싶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도 새삼 하게 한다. 그만큼 같은 곳..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 은희경 | 문학동네 '당신'의 몸과 마음을 관통하고 지나간 날실과 씨실의 흔적들 당신의 시간, 우리의 이야기 여섯 개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들이라고 생각했다. 서로 다른 이름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들이 각기 처한 상황이나 배경 등이 전혀 달랐으니까. 하지만 점차 읽어나가면서 이야기의 흐름에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를테면 여러 편에 걸쳐 등장하는 소위 없는 것 없이 잘 갖춰졌지만 어딘가 2% 부족한 신도시가 주는 공허한 이미지가 그랬고, 마주한 상황에 결정적인 문제는 없지만 겉돌고 있는 듯한 느낌도 받았던 이유리라. 그리고 한 발짝 뒷걸음친 자리에서 바라보는 시선 혹은 특유의 냉소 역시 그런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마지막 글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