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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파 라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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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이야기 | 줌파 라히리 | 마음산책 "몇 번이나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을까?" 「단테 알리기에리」의 ‘나’는 친구들과 만난 자리에서 광장 위 맑은 하늘을 바라본다. 그때에 친구 중 하나가 로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참 엿 같은 도시야. 하지만 너무나 아름다워.”(p.279) 줌파 라히리가 이탈리아어로 쓴 두 번째 소설 『로마 이야기』를 관통하는 문장이자, 그녀의 진심이 물씬 담긴 표현이라 여기며 이 책을 덮었던 것부터 적어둬야겠다. 정말 아름답지만 그에 상응하는 증오를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애증이야말로 우리가 일상 속에서 맞닥뜨리는 솔직한 감정 중의 하나일 것이므로 한층 이 문장에 마음을 빼앗겼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줌파 라히리라는 작가를 떠올리면, 인도계 이민 2세대로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성장했고 이후 이탈리아 로마로 이..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 줌파 라히리 | 마음산책 줌파 라히리의 작가적 모험 산문집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는 미국에 거주하면서 영어를 사용하며 그것으로 집필 활동을 해온 지난날을 접어 두고, 이탈리아 로마로 이주하여 이탈리아어를 통해 자신의 삶 전반을 새로이 채워 나가고자 했던 나날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녀는 ‘사람들은 사랑에 빠졌을 때 영원히 함께 살고 싶어 한다. 지금 경험하는 흥분과 열정이 계속되기를 꿈꾼다. 이탈리아어로 읽는 건 내게 그런 열망을 불러일으킨다.’(p.43) 라고 회고하고 있다. 이탈리아어에 대한 그녀의 진심이 절로 전해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사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미 이뤄낸 작가적 명성을 뒤로하고 새 언어로 작가의 길을 재 모색하기란 쉬운 결정은 아니었으리라. 그럼에도 그녀는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어내고 부단..
축복받은 집 | 줌파 라히리 | 마음산책 줌파 라히리의 첫 소설집 퓰리처상, 펜/헤밍웨이상 수상작 인간 존재와 그 내면, 나아가 그들 사이의 관계성에 대한 깊은 통찰이 돋보인다. 이를테면 어떤 상황 하에 직면해 있는 등장인물들은 그들 나름의 문제를 안고 있는데,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 상황을 마주하고 있다. 그 안에서 누군가는 분노하고 실망하며 당혹스러워하기도 하고, 때로는 작은 보람과 기쁨, 안도감을 맛보기도 한다. 또한 타인의 새로운 시선을 통해 익숙했으나 낯설어진 세계에 맞닥뜨림으로써 자신은 물론 타인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리하여 하루를, 일 년을, …그렇게 삶을 살아간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그들의 이야기 끝에서 우리 각자의 이야기가 새로이 시작된다는 데에 있다. 말하자면 각기 사정과 처해 있는 상황이 다름에도, 우리..
내가 있는 곳 | 줌파 라히리 | 마음산책 대부분 외롭지만, 가끔은 온기를 느끼고 가끔은 온전히 나의 것으로 누릴 수 있는 순간의 기억들 어떤 장소에서 마주한 상황, 그 안에서 느끼는 감정과 그것의 미묘한 변화가 짤막한 이야기 안에 응축돼 있다. 다소 쓸쓸해 보이지만 그 고독을 쉬이 포기할 수 없어 보이는 ‘그녀’가 이 이야기들의 주인공이다. 그녀의 발길이 닿는 곳을 따라 장소는 계속 바뀐다. 그리고 그 공간들은 그녀가 일상을 영위하는데 스치고 잠시 머무는, 때로는 한동안 머물기도 하는 평범하고도 친근한 장소들이다. 이를테면 그녀의 집과 집 근처 보도, 공원, 다리, 광장이 배경이 된다. 서점과 박물관, 수영장과 뷰티숍, 슈퍼마켓, 카페, 역 등도 등장한다. 그러나 그녀의 짤막한 이야기 속 배경은 흐려 보인다. 그저 그 장소에 놓인 그녀와 때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