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별별책/2021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 줌파 라히리 | 마음산책

반응형

 

[이미지 출처 - 알라딘]

 

 

 

줌파 라히리의 작가적 모험

 

 

 

산문집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는 미국에 거주하면서 영어를 사용하며 그것으로 집필 활동을 해온 지난날을 접어 두고, 이탈리아 로마로 이주하여 이탈리아어를 통해 자신의 삶 전반을 새로이 채워 나가고자 했던 나날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녀는 ‘사람들은 사랑에 빠졌을 때 영원히 함께 살고 싶어 한다. 지금 경험하는 흥분과 열정이 계속되기를 꿈꾼다. 이탈리아어로 읽는 건 내게 그런 열망을 불러일으킨다.’(p.43) 라고 회고하고 있다. 이탈리아어에 대한 그녀의 진심이 절로 전해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사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미 이뤄낸 작가적 명성을 뒤로하고 새 언어로 작가의 길을 재 모색하기란 쉬운 결정은 아니었으리라. 그럼에도 그녀는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어내고 부단한 시도와 노력 끝에 그것을 보란 듯이 해 내고 만다. 그리고 이 책이 바로 그 첫 결과물이자 증거물인 셈이다.

나는 입때껏 그녀의 소설을 읽어 오면서 더없이 평범한 인물들, 그들 내면에 자리한 어떤 소외되고 고독한, 그리하여 자신이란 사람을 좀더 근원적으로 들여다보는 일에 익숙한 이들을 무수히 만나왔다. 그리고 그것은 인도계 미국인이라는 작가의 이력이 만들어 낸 필연적 산물일 것이라 막연하게 짐작해 오면서. 그런데 작가의 소설 아닌 글을 뒤늦게 마주함으로써 미루어 짐작하던 이야기들을 보다 확실하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된 기분이다. 나는 왜 글을 쓸까, 에서 부터 작가의 표현대로 ‘불완전하고 제한적’인 이탈리아어를 어찌하여 선택하게 되었는지, 그리하여 시작된 배움의 지난한 과정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취감을 안겨준 이야기들까지, 작가 줌파 라히리는 물론 인간 줌파 라히리라는 사람에 한발 더 다가가는 친밀감을 선사하는 글들이었다. 더욱이 이탈리아어를 익히고 비로소 처음 시도한 짤막한 소설 2편이 실려 있어 보다 의미가 깊다.

새로운 언어로 작가적 모험을 감행했고, 그것을 통해 한층 깊어지고 빛날 수 있음을 보여준 작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내 불완전을 잊기 위해, 삶의 배경으로 숨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글을 써왔다. 어떤 의미에서 글쓰기는 불완전에 바치는 경의다. 사람처럼 책은 창작 기간에는 불완전하고 완성되지 않은 어떤 것이다. 임신 기간이 끝나면 사람은 태어나고 성장한다. 하지만 책은 쓰여지는 동안에만 살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적어도 내게 책은 다 씌어지고 나면 죽는다.    - p.94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 10점
줌파 라히리 지음, 이승수 옮김/마음산책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