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별별책/2019

내가 있는 곳 | 줌파 라히리 | 마음산책

반응형

 

[이미지 출처 - 알라딘]

 

 

 

대부분 외롭지만, 가끔은 온기를 느끼고
가끔은 온전히 나의 것으로 누릴 수 있는 순간의 기억들

 

 

 

어떤 장소에서 마주한 상황, 그 안에서 느끼는 감정과 그것의 미묘한 변화가 짤막한 이야기 안에 응축돼 있다. 다소 쓸쓸해 보이지만 그 고독을 쉬이 포기할 수 없어 보이는 ‘그녀’가 이 이야기들의 주인공이다. 그녀의 발길이 닿는 곳을 따라 장소는 계속 바뀐다. 그리고 그 공간들은 그녀가 일상을 영위하는데 스치고 잠시 머무는, 때로는 한동안 머물기도 하는 평범하고도 친근한 장소들이다. 이를테면 그녀의 집과 집 근처 보도, 공원, 다리, 광장이 배경이 된다. 서점과 박물관, 수영장과 뷰티숍, 슈퍼마켓, 카페, 역 등도 등장한다. 그러나 그녀의 짤막한 이야기 속 배경은 흐려 보인다. 그저 그 장소에 놓인 그녀와 때때로의 상대만이 또렷하게 존재할 뿐. 그런데 그 점이 짤막한 이야기임이 무색하게 그녀가 놓인 상황과 그 안에서 느끼는 감정들을 한결 임팩트 있게 보여준다.

 

그녀는 이제 익숙한 장소들을 뒤로 한 채, 새로운 곳으로 향하려 한다. 자연히 그동안 이런저런 장소에서 마주했던 이들 과도 당분간 혹은 영영 이별을 고하게 될 터이다. 어쩐지 그녀 다운 선택, 삶의 방식이라고 끄덕이게 된다. 그리고 상상해본다. 새로운 곳에서 만난 보도와 공원, 다리와 광장에서 그녀는 새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화를 나눌 것이다. 혹여 카페나 서점, 박물관에서 호감을 느끼는 상대를 만날 수도 있겠다. 불현듯 피어오르는 외로움과 불안감에 이른 새벽 눈을 뜨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모든 것이 차차 익숙해질 것이다.

 

어찌 됐든 그녀가 진정으로 원하는 방식의 삶을 살아가길.

 

 

 

머물기보다 나는 늘 도착하기를, 아니면 다시 들아가기를, 아니면 떠나기를 기다리면서 언제나 움직인다. 쌓다가 푸는 발밑의 작은 여행 가방, 책 한 권을 넣어둔 싸구려 손가방, 우리가 스쳐 지나지 않고 머물 어떤 곳이 있을까? 방향 잃은, 길 잃은, 당황한, 어긋난, 표류하는, 혼란스러운, 어지러운, 허둥지둥 대는, 뿌리 뽑힌, 갈팡질팡하는. 이런 단어의 관계 속에 나는 다시 처했다. 바로 이곳이 내가 사는 곳, 날 세상에 내려놓는 말들이다.    - p.189 「아무 데서도」 

 

 

 

 

 

내가 있는 곳 - 10점
줌파 라히리 지음, 이승수 옮김/마음산책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