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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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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잘 있습니다 | 이병률 | 문학과지성사 오래 전하지 못한 안부를 전합니다 바다는 잘 있습니다 '사는 것은 얼마나 남는 장사인가(p.15)'를 증명하기 위한 삶은 고되고 쓸쓸하다. 그래서 깊은 밤 쉬이 잠들지 못하고 뒤척인다. 한 잔 술을 마시기도 하고,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새벽 별을 헤아리기도 한다. 어느 긴 밤에는 좋아하는 편지지를 앞에 두고 상념에 젖기도 한다. 그러나 해가 밝으면 '어제까지의 풍경'일랑 뒤로 하고, 새 아침을 맞는다. 계속해서 감당하기로 마음먹으면서. 그리고 모든 것에 잘 있다는 안부를 전한다. '삶'이란 길 위에 한 인간이 서 있고, 그가 거니는 발자취는 시가 된다. 그것은 '쓰려고 쓰는 것'이기보다는 '쓸 수 없어서' 쓰는 시에 가깝다. 이를테면, 삶으로 쓰는 시(詩)랄 수 있다. 그 여정을 좇으면서, 자연스레 생의 ..
기형도 전집 | 기형도 전집 편집위원회 | 문학과지성사 입 속의 검은 잎 | 기형도 詩作 메모 나는 그처럼 쓸쓸한 밤눈들이 언젠가는 지상에 내려앉을 것임을 안다. 바람이 그치고 쩡쩡 얼었던 사나운 밤이 물러가면 눈은 또 다른 세상위에 눈물이 되어 스밀 것임을 나는 믿는다 byeolx2.tistory.com 기형도, 그토록 치명적이고 불길한 매혹, 혹은 질병의 이름 몹시도 무료했던 어느 오후의 묘한 이끌림을 지금도 분명하게 기억한다. 벽 한 면의 책장을 빼곡하게 채우고도 틈마다 비좁게 쌓여있는 책들 사이에서 유독 눈에 들어왔던 한 시집에 대한 얘기다. 시집 제목은 『잎 속의 검은 잎』. 페이지를 넘길수록 '기형도'라는 낯선 시인에게서 풍겨져 오는 생경함의 세계가 무섭도록 빠른 속도로 내 마음을 장악해왔다. 음울함이었다. 이후로도 간간히 기형도의 시집을 펼치곤 ..
슬픔이 없는 십오 초 | 심보선 | 문학과지성사 유일무이해지는 동시에 비밀이 되는 것 시간이 자꾸 묻는다. 살아온 날들에 대해, 살아갈 날들에 대해. 나는 허리를 곧추 세우고, 자못 진지하게 골몰한다. 대답해 보려고 애쓰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배웠으므로. 그런데 늘어놓는 말들이 쌓인데 쌓이고 또 쌓여서 어느새 거대한 산이 됐다. 한낮인데도 한낮 같지 않은, 그 산중 어딘가에 내가 있다. 검은 입에서 나온 말들에 갇혀서 어느 날은 타는 목마름에 물을 찾아 헤매다가, 다른 날에는 가려움증에 온몸을 베베 꼬다가, 또 어느 날에는 죽은 듯이 잠자코 있다가, 또 다른 날에는 메스꺼움에 헛구역질을 해 대다가. 스미는 빛의 양이 줄어드는 정도만큼씩 자기혐오와 자기 연민은 사이좋게 깊어간다. 그렇게 한 시절을 보내고 껍질을 벗는다. 그러나 끝이 아니다. 비로소 '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