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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25

너무 늦은 시간 | 클레어 키건 | 다산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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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클레어 키건이 25년의 시차를 두고 완성한
여자와 남자에 관한 세 편의 이야기

 

 

 

남녀 사이의 관계에 집중한다. 무엇이 그들을 어긋나게 했을까.

그들은 저마다 다른 성장 배경과 사고 방식을 지녔으면서도 자신이 바라는 대로 제 삶을 이끌어 가기 위해 충실한 이들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영위해 온 평범한 일상은 연인에 의해, 예기치 못한 불청객에 의해 때로는 자신 안에 품어온 욕망에 의해 한순간 전복되고 만다. 작가가 표제작 「너무 늦은 시간」을 비롯한 세 편의 이야기에 앞서 옮겨 두었던 필립 라킨의 시 한 줄이 자연스레 뇌리를 스치게 되는 것이다. “한쪽은 사라져야 한다.” 그렇게 도저히 공존하기 어려운 관계 앞에서 이별을 선언하고, 자신만의 복수를 감행하기도 하며, 발버둥 치다가 영원할 지옥에 대하여 생각하기도 했던 사람들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그 가운데 관계 이면에 자리한 차별, 혐오와 적대, 수치심∙∙∙∙∙∙, 그로 인한 좁힐 수 없는 서로를 향한 거리감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그리고 소망한다. 크고 작은 내면의 균열이 한 사람을 끝내 붕괴시키기 보다는 더 단단해 질 수 있는 시발점이 될 수 있기를 말이다.

 

 

 

카헐은 마음 한구석으로 아버지가 다른 남자였다면, 그때 그 모습을 보고 웃지 않았다면 자기가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오래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는 별 의미 없는 일이었다고, 못된 장난이었을 뿐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더 이상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거나 하기 싫어져서 옆으로 누웠지만 적어도 한 시간은 지난 후에야 잠이 찾아왔고, 그는 어느새 잠의 위안과 새로운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    - p.44, 45 「너무 늦은 시간」

 

높은 파도에 쓰레기가 밀려들어 왔지만 그녀의 주변은 온통 표백된 돌들이 층층이 쌓여 반짝거렸다. 이렇게 예쁜 돌들은 본 적이 없었다. 움직일 때마다 발밑에서 델프트 도자기처럼 덜걱거렸다. 그녀는 이 돌들이 얼마 동안 여기 있었을까, 어떤 종류일까 궁금했지만 그게 뭐가 중요할까? 그녀가 그러는 것처럼 이 돌들도 지금 여기에 있었다. 그녀는 주위를 한번 살피고 아무도 보이지 않자 옷을 벗고 물가의 거칠고 축축한 돌에 어색하게 발을 내디뎠다. 물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따뜻했다. 수심이 갑자기 깊어지는 곳까지 걸어가니 미끈거리는 해초가 허벅지에 닿아서 오싹했다. 물이 갈비뼈까지 올라오자 그녀는 심호흡을 하고 뒤로 누워서 멀리 헤엄쳐 갔다. 바로 이 순간 자신이 인생에서 해야 할 일이 바로 이것이라고, 그녀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녀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어느새 진정으로 믿지 않는 무언가를 향해 감사를 드리고 있었다.    - p.60, 61 「길고 고통스러운 죽음」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던 여자는 집을 떠날 때마다 다른 남자와 자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했다. 그래서 다음 주말에 그 답을 알아내기로 결심했다. 12월이었고, 또 한 해의 막이 닫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너무 나이가 들기 전에 하고 싶었다. 분명 실망스러우리라 생각했다.    - p.84 「남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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