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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16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줄리언 반스 | 다산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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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기억은 우리를 배반하고, 착각은 생을 행복으로 이끈다…

 

 

 

왜곡된 기억과 그로 인해 빚어지는 파국적 결과를 다룬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신중하기 그지없는 삶을 살았다고 자부하는 토니 웹스터. 그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이긴 적도, 패배한 적도 없이, 다만 인생이 흘러가는 대로 살지 않았던가. (… ) 환희와 절망이라는 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소설에서나 구경한 게 전부인 인간으로 살아오지 않았던가. 자책을 해도 마음속 깊이 아파한 적은 한 번도 없지 없지 않았던가'(p.242, 243) 라고 고백할 만큼 잔잔했던 그의 삶이, 일순간 혼돈에 빠지고 만다. 그 시작은 노년의 어느 날, 고교시절 친구였던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을 그 앞으로 남긴다는 유언장이 도착하면서부터다. 토니는 대학시절 자신의 여자 친구이자 에이드리언의 여자 친구이기도 했던 베로니카에게 그 일기장이 있음을 알아내고는 그것을 찾고자 수소문 끝에 그녀와 연락이 닿는다. 그러나 그녀는 일기장 넘기기를 거부하는 대신 한 통의 편지를 건넨다. 그것은 자신의 기억에서 흔적조차 없었던, 그러나 치기 어린 젊은 날에 자신이 써 보냈다는 사실에는 일말의 의심조차 할 수 없는 그야말로 낯선 편지였다. 저주의 말을 퍼붓던 지난날의 분노에 찬 자신을 목격하며, 그로 인해 불러왔던 엄청난 파국의 전모 또한 알게 된다. 이로써 왜곡되고 망각한 채로 살아온 그의 조용했던 삶이 허물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우리 인생 이야기를 얼마나 자주 할까. 그러면서 얼마나 가감하고, 윤색하고, 교묘히 가지를 쳐내는 걸까. 그러나 살아온 날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이야기에 제동을 걸고, 우리의 삶이 실제 우리가 산 삶과는 다르며, 다만 이제까지 우리 스스로에게 들려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우리에게 반기를 드는 사람도 적어진다. 타인에게 얘기했다 해도, 결국은 주로 위 자신에게 얘기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 p.165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기억'에 대한 성찰을 하게한다. 자신의 기억을 온전한 진실인양 살아가지만, 사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의식하고 있다. 우리가 믿고 싶고 감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기억을 반추하며 그것을 지우고 덧칠하는 가공의 과정을 얼마나 지난하게 반복하는지를. 물론 감정을 지닌 인간이기에 모든 기억들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고 보전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것 하나만은 명심해야 하지 않을까. 기억을 윤색하기 시작하는 순간, 더 이상 그것은 사실일 수 없고 진실일 수 없다는 것을.

 

 

인간은 생의 종말을 향해 간다. 아니다, 생 자체가 아니라, 무언가 다른 것, 그 생에서 가능한 모든 변화의 닫힘을 향해. 우리는 기나긴 휴지기를 부여받게 된다. 질문을 던질 시간적 여유를. 그 밖에 내가 잘못한 것은 무엇이었나? (… ) 거기엔 축적이 있다. 책임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 너머에, 혼란이 있다. 거대한 혼란이.    - p.254, 255

 

 

 

거의 막바지에 다다를 때 까지도 도통 종잡을 수 없었던 결말 탓에 그야말로 손에 땀을 쥐고 몰두해서 읽었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그리 길지 않은 분량임에도 인간의 기억을 소재로 한 이 소설이 뿜어내는 에너지는 사뭇 대단했다. 책을 펼치고 활자를 읽어나가기가 무섭게 어쩐지 모를 압도적인 힘(작가의 필력이겠지만)에 이끌려 반쯤은 얼이 빠진 채로 읽어버렸으니 말이다. 정말이지 근래 읽었던 소설 중에서 단연 으뜸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강렬한 여운이 남는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10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다산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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