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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20

녹나무의 파수꾼 | 히가시노 게이고 | 소미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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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세대를 뛰어넘는 마음, 그렇게 과거와 미래가 이어진다

 

 


레이토는 월향신사의 녹나무 지키는 일을 하기로 한다. 고아인 데다가 직업도 없고, 절도죄로 유치장에 수감 중인 처지여서 다른 선택지는 없는 까닭이다. 그렇게 시작된 파수꾼의 일은 의문투성이지만, 녹나무가 어떤 힘을 가졌는지는 오로지 스스로 알아내야만 한다. 레이토는 이런저런 사연으로 월향신사를 찾는 방문객들과 조우하면서 차츰 녹나무가 지닌 비밀에 다가간다.

소설의 마지막, 치후네는 레이토를 향해 묻는다. 자신이 앞으로 조금 더 살아가도 괜찮을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지에 대하여. 이에 레이토는 지금 자신의 기분을 녹나무에 예념해 그녀에게 전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자 치후네는 그 마음 씀씀이에 고마움을 표하며, “하지만 녹나무의 힘은 필요 없어요. 방금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이렇게 마주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전해져 오는 게 있다는 걸.”(p.549)이라고 대답한다. 내가 아는 한 우리가 딛고 있는 이 세계에 소원을 100% 들어준다는 월향신사의 녹나무와 같은 존재는 들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알고 있다. 설사 그런 신비수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우리에겐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그 보다 훨씬 간단한 방법으로 명확하게 자신의 마음을 표할 수 있는 능력을 지지고 있다는 사실을. 심지어 굳이 말로 꺼내지 않더라도 때로는 따뜻한 눈빛과 손길 같은 몸짓만으로도 그 진심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을. 그러나 안타깝게도 일상에서 그 좋은 능력을 까맣게 잊기라도 한 것처럼 수줍게 때로는 무심하게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돌이켜 보게 된다. 치후네가 말했듯, 서로 함께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전해져 오는 것이 분명 있거늘. 작가는 월향신사의 신비한 녹나무 이야기를 통해 이 점을 일깨우고 싶었던 게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럼에도 월향신사의 녹나무처럼 영험한 신비수가 존재한다면 어떨까, 상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만에 하나 직접적으로 전할 수 없는 물리적 거리나 상황에 처해 있다면, 시공간을 뛰어넘어 서로의 진심에 가닿을 수 있는 그야말로 신묘한 매개가 될 테니. 역시나 뭐든 없는 것보다는 있는 편이 나은지도 모르겠다.


 

“네, 저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곳이 과연 어떤 세계인지, 치후네 씨도 아직은 알지 못하잖아요. 잊어버렸다는 자각도 없다면 그곳은 절망의 세계 같은 게 아니죠. 어떤 의미에서는 새로운 세계예요. 데이터가 차례차례 삭제된다면 새로운 데이터를 자꾸자꾸 입력하면 되잖아요. 내일의 치후네 씨는 오늘의 치후네 씨가 아닐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뭐, 그래도 좋잖아요? 나는 받아들입니다. 내일의 치후네 씨를 받아들일 거예요. 왜요, 그러면 안 됩니까?”    - p.548

 

 

 

 

 

녹나무의 파수꾼 - 6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소미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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